사데교회의 온전한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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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7-30 15:08 조회53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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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3:1-6
1. 7영과 7별을 장중에 잡으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이 사데교회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는데 죽은 행위를 하므로 무능한 교회라고 책망합니다. 전능하신 주님에게 교회가 믿음으로 순종하면 온전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으로 행동하지 못한 것을 찾아 회개하는 자는 전능하신 주님에게 붙들려 행동할 수 있습니다. 못나도 잘난 사람 될 수 있고, 어리석어도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 주님이 붙들고 쓰시는 사데교회는 성령과 주님의 일꾼만 되면 온전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과 주님이 그 사자를 오른 손 장중에 잡으시면 사데교회는 완전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흰옷을 입고 주님과 동행하는 행위는 온전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흰옷을 벗어버리면 온전하지 못하므로 죽은 행위를 하게 됩니다.
❶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우리 영과 마음과 몸은 주님의 완전한 구속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의 행위만을 심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을 우리가 어떻게 믿고 행동하느냐? 이것을 주님이 심판합니다. 우리의 영과 육은 이미 대속으로 공심판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받는 심판은 우리의 신앙행위에 대한 사심판입니다. 우리 행위와 일도 공심판에서 대속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입은 대속을 주님이 다시 벗길 수도 없고, 또 중복으로 입힐 수도 없습니다.
❷ 오늘 우리는 현실에서 자유롭게 대속을 입고 길을 살 수도 있고, 대속을 벗어버리고 길을 살 수도 있습니다.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대속을 벗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넓은 길이 있고, 대속을 입고 주님만 따라갈 수 있는 하나뿐인 좁은 생명 길이 있습니다.
❸ 택자로서 잘못 믿는 사람이라도, 영도 하늘나라 가고 심신도 하늘나라에 갑니다. 똑같이 하늘나라에 가도 신앙행위로 마련된 영광과 실력이 각각 다릅니다. 그래서 육체로 행동하는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으로 행동하는 자는 영생을 거둔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행동할 때 육신의 생각과 욕심인가, 아니면 성령의 생각과 욕심인가를 구별해야 합니다.
❹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살았다는 이름을 가졌으나 지금 행동하는 것이 생명책에서 흐려지느냐? 아니면 그대로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느냐? 생명책에 행동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자는 산 자입니다. 무엇이 산 자의 생명책에 들었다는 말입니까? 믿음으로 순종한 행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신앙행위를 말씀합니다. 영도, 마음도, 몸도 아니다. 주님이 공심판 대속할 때 영도, 심신도, 행위도, 기능도, 의의 자격을 받았습니다. 죄는 주님이 멸하러 오셨기 때문에 죄는 대속하지 않습니다. 죄를 범한 우리를 구원합니다. 죄도, 마귀도, 사망도 주님이 멸하러 오셨습니다. 죄와 마귀와 사망에 종이 된 영과 육과 행위와 기능을 주님이 완전히 구속했습니다. 공심판에서 주님이 우리의 믿음과 행위를 완전히 구원했기 때문에 공심판은 우리에게 면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심판은 우리의 행위를 심판하는 사심판이므로 우리가 각각 행한 대로 심판을 반드시 받게 됩니다.
❺ 심신이 행동할 때에 심신의 정력이 기능으로 성화되고 성장합니다. 그 정력은 행동할 때 자본이 됩니다. 말을 하면 언어 기능으로, 살인하면 살인하는 기능으로 변화됩니다. 심신은 죄의 병기가 되기도 하고, 의의 병기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의 정력이 다 없어지면 그 사람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 정력은 어디에 투자됩니까? 그 정력이 육체로 행동하는데 투자되느냐? 성령으로 행동하는데에 투자되느냐? 성령은 사활대속을 입고 살도록 역사합니다. 성부는 그것을 총괄합니다.
❻ 성령이 중생된 영과 하나가 되어 자기의 심신을 다스립니다. 중생된 영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았습니다. 중생된 영이 범죄한다고 하는 것은 영을 마음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범죄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은 영과 혼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분설의 장단점, 삼분설의 장단점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대속을 입은 자는 완전자입니다. 김현봉 목사님의 물질개악설은 잘못된 교리이다. 심신은 물질이기 때문에 잘못 물든 죄를 빼면 깨끗해집니다. 심신은 심판되지 않고, 그 행위만 심판됩니다. 행동할 때 그 마음과 몸에서 나오는데 정력이 사용됩니다. 그 정력이 죄를 범하는 기능이 되든지, 의를 행하는 기능이 되든지 기능으로 변화가 됩니다.
❼ 살았다하는 이름이 있지만, 그 행위는 산 행위를 할 수도 있고, 죽은 행위를 할 수도 있습니다. 5절에 이기는 자는 내가 그 이름 곧 행위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하는 말씀은 생명책에 그 행위를 흐릴 수도 있고, 흐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으l의 병기는 영원히 사용될 수 있으나, 죄의 병기는 멸하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❽ 죽은 자로다. 행위에서 자기의 정력이 죽어지는 것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육체로 사용되면 썩어서 없어지고, 성령으로 사용되면 기능이 영생합니다. 그 육체가 세계적으로 유명해도 죽으면 썩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에서 네피림이 다 그러합니다.
❾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남아서 죽은 것은 죽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살리면 살아서 영생합니다. 남은 때에 심신의 기능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성령으로 살면 살고, 육체로 살면 죽는 것입니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우리 신앙행위의 표준은 온전입니다.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그것이 성령의 은사입니다. 목회자의 설교로 받은 것은 생각해야 하고, 영감으로 들은 것은 지켜 행해야 합니다. 행위구원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 신앙행위의 표준은 온전입니다. 우리 행위의 준비는 다하는 것입니다. 건설구원은 완전 대속을 벗지 않고 입고 다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주의입니다. 율법주의가 아닙니다. 만일 일깨지 않으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만일 깨어있지 않으면 네가 가진 것을 도적 당하게 됩니다. 도적 당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정력, 돈, 권세, 자유도, 생명을 도적당합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옵니다. 내가 가진 것을 주님에게 이전 수속하는 것이 연보입니다. 자본주의는 시은역사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로 시은역사를 잘했습니다. 자본주의가 시은 역사를 하지 않으면 망해버립니다.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내게 합당한 자인 연고라. 그 옷은 예수님 사활대속입니다. 흰옷 입은 자입니다. 그는 주님에게 합당한 자입니다.
5. 이기는 자는 흰옷을 입은 자입니다. 이기는 자는 받은 것을 생각하고, 들은 것을 지켜 행하고, 지켜 행하지 못한 것은 회개하면 됩니다. 흰옷을 입은 자는 주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생명책에 흐리지 아니합니다.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1. 7영과 7별을 장중에 잡으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이 사데교회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는데 죽은 행위를 하므로 무능한 교회라고 책망합니다. 전능하신 주님에게 교회가 믿음으로 순종하면 온전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으로 행동하지 못한 것을 찾아 회개하는 자는 전능하신 주님에게 붙들려 행동할 수 있습니다. 못나도 잘난 사람 될 수 있고, 어리석어도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 주님이 붙들고 쓰시는 사데교회는 성령과 주님의 일꾼만 되면 온전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과 주님이 그 사자를 오른 손 장중에 잡으시면 사데교회는 완전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흰옷을 입고 주님과 동행하는 행위는 온전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흰옷을 벗어버리면 온전하지 못하므로 죽은 행위를 하게 됩니다.
❶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우리 영과 마음과 몸은 주님의 완전한 구속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의 행위만을 심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을 우리가 어떻게 믿고 행동하느냐? 이것을 주님이 심판합니다. 우리의 영과 육은 이미 대속으로 공심판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받는 심판은 우리의 신앙행위에 대한 사심판입니다. 우리 행위와 일도 공심판에서 대속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입은 대속을 주님이 다시 벗길 수도 없고, 또 중복으로 입힐 수도 없습니다.
❷ 오늘 우리는 현실에서 자유롭게 대속을 입고 길을 살 수도 있고, 대속을 벗어버리고 길을 살 수도 있습니다.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대속을 벗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넓은 길이 있고, 대속을 입고 주님만 따라갈 수 있는 하나뿐인 좁은 생명 길이 있습니다.
❸ 택자로서 잘못 믿는 사람이라도, 영도 하늘나라 가고 심신도 하늘나라에 갑니다. 똑같이 하늘나라에 가도 신앙행위로 마련된 영광과 실력이 각각 다릅니다. 그래서 육체로 행동하는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으로 행동하는 자는 영생을 거둔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행동할 때 육신의 생각과 욕심인가, 아니면 성령의 생각과 욕심인가를 구별해야 합니다.
❹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살았다는 이름을 가졌으나 지금 행동하는 것이 생명책에서 흐려지느냐? 아니면 그대로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느냐? 생명책에 행동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자는 산 자입니다. 무엇이 산 자의 생명책에 들었다는 말입니까? 믿음으로 순종한 행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신앙행위를 말씀합니다. 영도, 마음도, 몸도 아니다. 주님이 공심판 대속할 때 영도, 심신도, 행위도, 기능도, 의의 자격을 받았습니다. 죄는 주님이 멸하러 오셨기 때문에 죄는 대속하지 않습니다. 죄를 범한 우리를 구원합니다. 죄도, 마귀도, 사망도 주님이 멸하러 오셨습니다. 죄와 마귀와 사망에 종이 된 영과 육과 행위와 기능을 주님이 완전히 구속했습니다. 공심판에서 주님이 우리의 믿음과 행위를 완전히 구원했기 때문에 공심판은 우리에게 면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심판은 우리의 행위를 심판하는 사심판이므로 우리가 각각 행한 대로 심판을 반드시 받게 됩니다.
❺ 심신이 행동할 때에 심신의 정력이 기능으로 성화되고 성장합니다. 그 정력은 행동할 때 자본이 됩니다. 말을 하면 언어 기능으로, 살인하면 살인하는 기능으로 변화됩니다. 심신은 죄의 병기가 되기도 하고, 의의 병기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의 정력이 다 없어지면 그 사람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 정력은 어디에 투자됩니까? 그 정력이 육체로 행동하는데 투자되느냐? 성령으로 행동하는데에 투자되느냐? 성령은 사활대속을 입고 살도록 역사합니다. 성부는 그것을 총괄합니다.
❻ 성령이 중생된 영과 하나가 되어 자기의 심신을 다스립니다. 중생된 영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았습니다. 중생된 영이 범죄한다고 하는 것은 영을 마음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범죄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은 영과 혼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분설의 장단점, 삼분설의 장단점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대속을 입은 자는 완전자입니다. 김현봉 목사님의 물질개악설은 잘못된 교리이다. 심신은 물질이기 때문에 잘못 물든 죄를 빼면 깨끗해집니다. 심신은 심판되지 않고, 그 행위만 심판됩니다. 행동할 때 그 마음과 몸에서 나오는데 정력이 사용됩니다. 그 정력이 죄를 범하는 기능이 되든지, 의를 행하는 기능이 되든지 기능으로 변화가 됩니다.
❼ 살았다하는 이름이 있지만, 그 행위는 산 행위를 할 수도 있고, 죽은 행위를 할 수도 있습니다. 5절에 이기는 자는 내가 그 이름 곧 행위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하는 말씀은 생명책에 그 행위를 흐릴 수도 있고, 흐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으l의 병기는 영원히 사용될 수 있으나, 죄의 병기는 멸하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❽ 죽은 자로다. 행위에서 자기의 정력이 죽어지는 것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육체로 사용되면 썩어서 없어지고, 성령으로 사용되면 기능이 영생합니다. 그 육체가 세계적으로 유명해도 죽으면 썩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에서 네피림이 다 그러합니다.
❾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남아서 죽은 것은 죽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살리면 살아서 영생합니다. 남은 때에 심신의 기능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성령으로 살면 살고, 육체로 살면 죽는 것입니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우리 신앙행위의 표준은 온전입니다.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그것이 성령의 은사입니다. 목회자의 설교로 받은 것은 생각해야 하고, 영감으로 들은 것은 지켜 행해야 합니다. 행위구원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 신앙행위의 표준은 온전입니다. 우리 행위의 준비는 다하는 것입니다. 건설구원은 완전 대속을 벗지 않고 입고 다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주의입니다. 율법주의가 아닙니다. 만일 일깨지 않으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만일 깨어있지 않으면 네가 가진 것을 도적 당하게 됩니다. 도적 당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정력, 돈, 권세, 자유도, 생명을 도적당합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옵니다. 내가 가진 것을 주님에게 이전 수속하는 것이 연보입니다. 자본주의는 시은역사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로 시은역사를 잘했습니다. 자본주의가 시은 역사를 하지 않으면 망해버립니다.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내게 합당한 자인 연고라. 그 옷은 예수님 사활대속입니다. 흰옷 입은 자입니다. 그는 주님에게 합당한 자입니다.
5. 이기는 자는 흰옷을 입은 자입니다. 이기는 자는 받은 것을 생각하고, 들은 것을 지켜 행하고, 지켜 행하지 못한 것은 회개하면 됩니다. 흰옷을 입은 자는 주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생명책에 흐리지 아니합니다.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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