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만나는 방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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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6-23 17:17 조회26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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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장 9:9-13
1. 바리새인들은 그 당시 자타가 정통이라고 하며 열심히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랍비들은 세리와 같이 먹지도 말고, 동업도 하지 말고, 사귀지도 못하게 교훈했다. 예수님은 그때 세리 마태를 불러내시고, 마태는 자기 집에서 주님을 모시고 많은 세리와 죄인들을 불러 잔치를 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고 제자들에게 비난을 했다. 그 소리를 들은 예수님은 그들에게 병든 자에게 의원이 필요하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없다고 했고, 하나님은 긍휼을 제사보다 중하게 여김을 말씀했고,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했다.
2. 세리 마태가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실 때 즉시 그는 모든 일을 사면하고 일어나 주님을 좇았다. 어떻게 해서 그 좋은 직장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는가? 그것은 평소에 죄인이라는 비난을 받는 가운데 잘못된 죄를 벗어버리려 하는 양심의 가책을 가졌고, 주님을 향하여 깨끗한 심령을 가지려는 결백의 욕망을 가지고 있은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주님이 마태를 찾아와서 “너는 나를 좇으라” 하셨고, 마태는 즉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 두 가지 양심의 가책과 결백에 대한 욕망을 가진 마태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던 것이다.
3. 이 두 가지 외에 다른 욕망을 가지고 어떻게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기도하며 간구해도 주님은 응답하여 주시지 못한다. 주님이 능력이 없어서 이루어주시지 못하는 것 아니다. 두 가지를 가지지 않고 이루려고 하는 그것이 원죄 곧 자기중심 자기위주이다. 이러한 악을 가지고는 주님이 응답하여 주시지 못한다. 이러한 악을 제하는 것도 두 가지만 가지면 된다. 자기의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진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 바르고 참되게 주님을 따라가려는 성결의 욕망이 있으면 주님을 만나지도 못하고 주님의 인도를 받을 수도 없다.
4.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동행하면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지은 것과 같다. 이러한 건설은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해 주어야 가능하다. 불에도 타지 않고, 심판에도 상을 받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구원에 이르는 도리는 자기의 형편에서 양심의 가책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 가려는 의로운 욕망이 속에 있어야 한다.
5.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와 같이 두 가지 양심의 가책과 성결의 욕망을 가지면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의 능력을 힘입게 되고 주님의 인도와 동행으로 우리의 구원이 건설된다. 바리새인들과 같이 사랑과 긍휼이 없는 사람이 되지 말고, 죄로 인하여 생긴 사람 병을 고려는 마음과 죄인이 되어 고치고 사함 받을 것을 주님에게 간구하는 욕망을 가지면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동행할 수 있게 된다.
1. 바리새인들은 그 당시 자타가 정통이라고 하며 열심히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랍비들은 세리와 같이 먹지도 말고, 동업도 하지 말고, 사귀지도 못하게 교훈했다. 예수님은 그때 세리 마태를 불러내시고, 마태는 자기 집에서 주님을 모시고 많은 세리와 죄인들을 불러 잔치를 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고 제자들에게 비난을 했다. 그 소리를 들은 예수님은 그들에게 병든 자에게 의원이 필요하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없다고 했고, 하나님은 긍휼을 제사보다 중하게 여김을 말씀했고,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했다.
2. 세리 마태가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실 때 즉시 그는 모든 일을 사면하고 일어나 주님을 좇았다. 어떻게 해서 그 좋은 직장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는가? 그것은 평소에 죄인이라는 비난을 받는 가운데 잘못된 죄를 벗어버리려 하는 양심의 가책을 가졌고, 주님을 향하여 깨끗한 심령을 가지려는 결백의 욕망을 가지고 있은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주님이 마태를 찾아와서 “너는 나를 좇으라” 하셨고, 마태는 즉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 두 가지 양심의 가책과 결백에 대한 욕망을 가진 마태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던 것이다.
3. 이 두 가지 외에 다른 욕망을 가지고 어떻게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기도하며 간구해도 주님은 응답하여 주시지 못한다. 주님이 능력이 없어서 이루어주시지 못하는 것 아니다. 두 가지를 가지지 않고 이루려고 하는 그것이 원죄 곧 자기중심 자기위주이다. 이러한 악을 가지고는 주님이 응답하여 주시지 못한다. 이러한 악을 제하는 것도 두 가지만 가지면 된다. 자기의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진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 바르고 참되게 주님을 따라가려는 성결의 욕망이 있으면 주님을 만나지도 못하고 주님의 인도를 받을 수도 없다.
4.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동행하면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지은 것과 같다. 이러한 건설은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해 주어야 가능하다. 불에도 타지 않고, 심판에도 상을 받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구원에 이르는 도리는 자기의 형편에서 양심의 가책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 가려는 의로운 욕망이 속에 있어야 한다.
5.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와 같이 두 가지 양심의 가책과 성결의 욕망을 가지면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의 능력을 힘입게 되고 주님의 인도와 동행으로 우리의 구원이 건설된다. 바리새인들과 같이 사랑과 긍휼이 없는 사람이 되지 말고, 죄로 인하여 생긴 사람 병을 고려는 마음과 죄인이 되어 고치고 사함 받을 것을 주님에게 간구하는 욕망을 가지면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동행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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