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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목자와 삯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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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1-27 09:57 조회2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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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0:6-18,                         
1. 1-5절까지의 예수님 말씀을 무리들이 알지를 못했습니다. 6-18절까지의 말씀은 우리가 알고 믿어야 할 말씀을 다시 말씀합니다.

7-8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님 보다 먼저 온 자는 예수님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 예수님의 사활대속 외에 다른 공로, 영감 도리 외에 다른 모든 주장이나 지식들입니다. 먼저 왔다 말은 사람이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믿기 전에 자기에게 먼저 절도가 와 있고, 강도가 와 있습니다. 그것은 원죄와 본죄입니다. 예수님의 구원 외에 땅위에 모든 구원이라고 하는 것들입니다. 원죄는 피조물 중심의 역사이고, 본죄는 피조물 중심으로 활동한 것들입니다. 예수님 믿기 전에 먼저 절도와 강도가 우리 안에 와서 있습니다. 우리의 기존 지식, 선입적 관념, 주관, 경험 체험, 모든 지식은 다 절도이고 강도입니다. 이것은 부인해야 하는 자기 옛 사람입니다.

9절, 내가 문이니 예수님이 문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우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이루려고 할 때에 성령님이 도우셔서 진리도 깨닫고, 영감도 받고, 그 진리와 영감대로 성화 구원도 얻을 수 있습니다.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고 나올 때에 구원도 얻고 꼴도 얻습니다. 이 꼴은 양의 양식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구원과 양식은 우리가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는 이 길에서만 얻지 다른 데서는 얻지 못합니다.

10절,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입니다. 도적이 온 것은 인간에게 선입적 관념, 기존 지식, 주관, 자율, 본질과 본성 이 다 절도이고 강도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절도와 강도가 와서 있는데, 절도와 강도는 자기 안에 있는 자기 아닌 자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생명을 얻게 하고, 하나님과 연결을 더 강하게 충만히 견고히 가지게 하려고 왔다고 말씀합니다.

11-13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고,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가 있는데, 삯꾼은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을 여기에 말씀합니다.

14-15절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선한 목자도 양을 알고, 양도 목자를 알기를 아버지가 예수님을 아신 것과 같고, 예수님이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여기 안다는 말씀은 아버지가 예수님을 전적 책임지고, 예수님도 전적 아버지를 책임진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는 예수님의 전부요, 예수님은 아버지의 전부인 것과 같이, 선한 목자는 양의 전부이고, 양은 선한 목자의 전부입니다. 이렇게 아버지와 예수님이 하나된 것처럼, 예수님과 목자가 하나 되는 것과 목자와 양이 하나 되는 것을 여기에 말씀합니다.

16절,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왜 아버지가 이렇게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사랑하시는 것은 아버지의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 후에 목숨을 얻게 하려는 이것 때문에 아버지가 사랑한다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목숨을 양을 위해서 버리고,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한 이것 때문에 아버지께서 사랑한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지신 목숨은 버리지 않고 100년 살아도, 200년 살아도, 1000년 살아도 그 목숨은 앞으로 죽는 목숨입니다. 살아 있어도 죽을 수 있는 목숨입니다. 또 그 목숨은 아버지의 명령을 다 순종치 못한 목숨입니다. 또 그 목숨은 아버지의 만족과 당신의 양과 당신이 지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지 못한 목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목숨을 버리고 다시 얻은 목숨은 영원히 사망이 침노할 수 없는 목숨입니다. 다시 얻는 목숨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지공지성법에 만족하게 한 목숨입니다. 택한 자와 모든 피조물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영원히 줄 수 있는 목숨입니다. 이러한 목숨으로 다시 예수님은 살아나신 것입니다.

18절,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2. 알아야 하는 구원도리

1) 우리는 여기에서 내가 절도나 강도는 절대로 되지 아니해야 되겠습니다. 절도나 강도가 되면 내 구원과 다른 사람의 구원을 멸망시키고 사망하게 합니다. 또 절도나 강도에게 해를 받지 아니해야 되겠습니다. 우리 자신이 절도나 강도가 되면 내 구원과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의 구원을 멸망하게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스스로 절도나 강도가 안 돼야 되겠고, 또 절도나 강도의 해를 받지 아니해야 되겠습니다. 절도와 강도의 해를 받지 아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또 절도나 강도가 돼지 아니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는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는 목자를 우리의 목자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2) 이제 우리는 양의 목자로서 어떤 목자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선한 목자가 돼서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은 무엇 때문에 사랑하셨습니까? 목숨을 다시 얻기 위해서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려 다시 목숨을 얻으려 하는 이것으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양을 위하여 우리가 소유와 몸과 목숨을 버리면 다시 소유와 몸과 목숨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고,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목숨을 영원히 얻기 위해서 가진 목숨을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도 양을 위해서 영원한 목숨을 다시 얻기 위해서 지금 죽은 목숨을 버리는 것이 주님에게 사랑을 받는 유일의 법칙입니다. 유한한 것이 무한한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모든 것에게 빚진 것이 영원히 만족을 주는 이것이 새 생명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양을 위해서 이미 죽은 목숨도 소유도 몸도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목숨과 소유와 몸으로 다시 얻는 것입니다. 이렇게 버리는 것은 강제로 버리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스스로 자원해서 버리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도록 하는 것은 양을 위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유와 몸과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시 영원한 소유와 몸과 목숨으로 얻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그 시대에 양떼를 위해서 생명을 사자에게 버린 것은 강제가 아닙니다. 안 버리려면 안 버릴 수 있었습니다. 기도 안 하겠습니다 하면 안 버릴 수 있습니다. 안 버릴 수도 있었는데 다니엘은 스스로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목숨을 다시 살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신앙 성공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우리가 절도나 강도는 절대로 되지 아니해야 하고, 또 우리가 절도나 강도의 해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 방법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는 목자가 되어야 하고, 또 우리 목자를 찾아 따라가야 합니다.
2) 우리는 어떤 목자가 되어야 합니까? 선한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 양을 위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영원히 얻기 위해서 버리는 것입니다. 자타의 구원과 복음을 위해서 버리는 이것이 우리의 신앙 성공입니다. 버리면 우리가 영원한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시 얻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3) 14절에, 선한 목자는 양의 목자이므로 양이 목자를 알고 목자가 양을 아는 것이 아버지가 아들을 알고 아들이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아버지가 예수님을 책임지고, 예수님이 아버지를 책임지므로 아버지와 예수님은 영원히 틈이 없는 하나인 것과 같이, 양과 예수님 사이에 틈이 없는 하나가 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어 신인양성일행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로서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심과 같이 예수님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고 다시 목숨을 얻음으로 양과 예수님이 하나된 것이 성부와 성자가 신인양성일위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가진 것을 영원히 얻는 방편은 양을 위해서 버리는 것입니다. 양을 위해서 우리가 먼저 버리고, 다시 영원히 얻어서 성부와 성자가 하나된 것처럼, 예수님과 택한 자들이 하나된 것처럼, 우리가 우리에게 속한 양과 하나가 되는 이것이 오늘 우리의 성공입니다. 우리의 성공은 선한 목자가 되어 주님 몸인 하나의 교회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4) 우리가 이러한 성공을 원하지만, 삯꾼이 되면 이러한 성공하지 못합니다. 삯꾼은 목자도 아니고, 양도 제 양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면 양을 두고 달아나고, 양이 다 죽게 됩니다. 그러면 양과 우리는 영원히 이별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도 주님과 우리 사이에 그 부분은 사랑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그러면 삯꾼은 누구입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중대한 문제입니다. 삯꾼은 양을 자기 양으로 기르지 않습니다. 인간의 구원을 제 것으로 삼지 않습니다. 인간을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구원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영생을 위해서, 인간의 무궁세계를 위해서 사랑하지 않고 희생하지 않습니다. 삯꾼은 땅위에 있는 것을 욕심내어 복음 운동하는 자입니다. 삯꾼이기 때문에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지 않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이 아무리 날뛰고 장담해도 인간의 구원을 소망하지 않고 땅위에 무엇을 소망하므로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주님 앞에 바칠 수 없습니다. 썩을 것을 썩지 않은 것으로 심을 수 없습니다. 약한 것을 강한 것으로 심을 수 없습니다. 욕된 것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심을 수 없습니다. 멸망의 것을 영생의 것으로 옮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삯꾼이라는 말씀에 크게 주의를 기울여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인간의 구원을 버리고 세상에 어떤 것이라도 소망하지 맙시다. 세상에 어떤 것이라도 소망하면 어려움이 올 때 자기 양을 버려두고 도망하는 삯꾼이 됩니다. 우리는 삯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선한 목자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구속하신 주님을 사랑하므로 형제를 구원하려고 우리의 소유와 몸과 목숨을 희생하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우리의 소유와 몸과 목숨을 영원히 얻게 하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교회가 건설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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