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장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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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12-26 16:53 조회1,33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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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강해
제목: 천국의 새 생활
요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3절)
5-7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이다. 그가 구약의 약속과 예언을 성취하시고 구속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시민으로서 영생하는 새 계명을 주신 것이다.
1절은 외식하지 말라, 2-4절은 구제에 대한 바른 자세, 5절은 조심해야 할 외식기도, 7-8절은 중언부언 기도하지 말라, 9-13절은 주기도문, 14-15절은 사람의 과실에 대한 용서, 16-18절은 금식기도, 19-23절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24절은 두 주인, 25-32절은 의식주와 이방인, 33-34절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한다.
외식하지 말라 6:1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성도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바라보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천국시민이다(빌 3:20; 요 1:12). 이 시민권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는 권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택함과 창조와 계약과 구속적으로 존귀하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다른 모든 피조물과 다르게 특수 창조를 받았다.
그리스도인은 사람과 관계를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한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서 바른 관계를 가져야 한다. 사람에게 자기의 의를 나타내는 것을 주의하고, 하나님의 의를 증거하여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의로 의인이 되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서 천국을 건설하고 의를 이루어야 한다. 천국은 의의 나라이므로 성도의 생활은 의인 생활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믿음으로 의로운 생활을 할 때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 앞에서 하지 말라고 주의하셨다. 사람 앞에서 의를 행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한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이미 칭찬과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는 의에 대한 상은 천국에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원 완전한 상급을 받도록 되어있다.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제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사람에게 의를 행할 때에 사람 앞에서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은밀히 해야 한다. 하나님은 외모로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신다. 하나님에게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해야 한다.
구제에 대한 바른 자세 6:2-4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사람에게 칭찬과 대우와 영광을 얻기 위하여 외식하는 구제를 하지 말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실한 구제를 하라 명령하신다. 구제는 돈으로, 인력으로, 지혜로, 연보로, 기도로 하여 형제를 죄에서 구원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게 하는 것이 구제이다. 구원이 목적 안 되고 사람만 돕고 일만 도우면 다 외식 구제이다. 외식 구제에는 아버지께서 주시는 상이 없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를 보고 구제하는 것이 진실한 구제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 돕는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만족하시고, 하나님도 함께 도우시고 계속 은혜를 주셔야 된다. 도와서 구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구제하는 것이 형제의 구원에 유익이 되어야 하고, 내게도 유익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도 기뻐하시므로 책임질 수 있는 구제가 되어야 진실한 구제이다.
3-4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이 말씀은 구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씀이다. 오른 손도 왼손도 알 필요가 없고 하나님이 아시고 구제하라고 하시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씀이다. 구제할 수 없는 것은 부정하거나 불의하면 할 수 없고, 외식하는 구제 곧 하나님 없이 사람만을 생각하고 위하는 외식은 하나님의 돕는 역사가 없기 때문에 결국 헛일이 되고 만다. 외식하는 구제는 삼가고 은밀한 구제를 놓치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의를 행하는 것이 됨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이 있다.
조심해야 할 외식기도 6:5
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주님은 외식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금하셨다. 유대인들의 외식하는 기도는 사람들에게 저들의 열심과 경건을 보이려고 큰 거리와 회당에서 서서 기도하는 것이고, 이방인들의 외식하는 기도는 중언부언하여 주님은 상대하지 않고 말만 많이 하면 들으시는 줄 알고 기도하는 외식을 조심하라고 교훈하여 주셨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외식기도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이 외식 기도이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씩 기도를 했다(단6:10; 행10:9; 삼상1:26; 막11:25).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큰 거리나 회당에 가서 서서 기도를 했다. 기도의 장소와 모습과 열심을 말씀한 것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도했기 때문에 저희는 이미 상을 받았다고 말씀한다. 상은 기도의 효력이다. 사람들이 봐주고, 알아주고, 인정하여 주는 것이 기도의 효력이다. 구제가 사람에게 대한 의이면, 기도는 하나님에게 대한 의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진실한 기도라야 한다. 6절에,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외식 기도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성경에 ‘하나님은 너희와 항상 함께 계신다.’ ‘너희 마음과 뜻과 중심을 살피신다.’ 말씀대로 알고 인정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다. 기도할 때에 기도의 대상인 주님을 잊어버리거나, 어떤 피조물을 상대해서 기도하면 그것은 외식 기도이다. 기도는 향과 같아서 모든 악취를 제거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둘이 앉아서 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잊어버리고 사람들만 의식하고 자기의 열심과 경건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도하는 외식을 벗어버려야 한다.
진실한 기도를 하는 것은 ①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마주 상대하는 기도가 제일 중요하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고 바라보며 받은 은혜를 깨달아 감사하고, ② 상대가 하나님이시므로 말씀으로 자기를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이 내게 대해서 섭섭해 하시는 것을 찾아 회개하는 것이 주님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회개하므로 자기의 심령을 깨끗하게 해야 성령이 감동하시고 진리로 가르쳐 주신다. ③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목적으로 의논하여 아뢰고(요 14:13), 필요한 것을 찾아 간구하면 주님은 응답하신다. 주님의 응답은 성령의 영감과 진리를 깨달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주님의 응답을 받는 것이다.
골방 기도 6:6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주님이 “너는” 하는 것은 기도는 일대 일로 대화하는 것이다. 외식하는 기도는 마귀나 만나지 하나님은 만나지 못한다. 기도하는 것은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고 하나님이 내게 어떻게 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기도요, 하나님만을 상대해서 하나님과 서로 대화하는 것이 기도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껍데기뿐이지 알맹이 기도는 안 된다.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문을 닫고 하는 것은 세상이 보이지 않도록 세상을 뒤로 두라는 말이다. 골방에 들어가는 것은 ① 세상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피조물을 창조주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거나 사모하는 자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 현실로 인도하시고 홀로 주권하시고 주재하시는 하나님을 소망하고 믿음으로 찾고 부르짖어야 한다(골 3:1-4; 벧전 3:21). 만물 안에 계시고 만물과 함께 계시고 만물 위에 계시는 주 하나님을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 만물을 창조해 주시고 만물 안에 계시고 홀로 주권주재 하시는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한다. ②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진리로 인도하시는 주 하나님에게 회개 기도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 안에 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자기 안에 계신다. 자신을 성전 삼으시고 자기 안에 계신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자기의 양심 속에 들어가야 하나님을 만난다(벧전 3:21). 자기의 양심은 마음의 빛이다. 자기가 아는 대로는 자기의 마음을 옳고 바르고 깨끗하게 해야 한다. 허영, 허욕, 거짓, 교만을 씻어버리고 흠과 점이 없는 착한 양심을 가져야 하나님을 상대할 수 있다. 자기의 신앙양심 속에 들어가야 한다. ③ 또 성령의 감동하시는 영감 안에 계신 하나님을 찾아 만나야 한다. 자기의 영감과 진리 속에 들어가는 것이 골방에 들어가는 것이다(요15:10). 돈을 탐하는 사람에게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말씀이 자기의 진리이고, 부모에게 불효하는 사람에게는 오 계명이 자기의 진리이다. 음행하는 사람에게는 몇 계명이 자기의 진리입니까? 칠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칭의를 벗지 않고 입고 있는 자이다. 그래서 그 안에 주 하나님이 내주하시고 은혜와 복으로 역사하여 주신다. ④ 골방에 들어가는 것은 만물 속에 계시고, 자기의 신앙양심 속에 계시고, 자기의 영감과 진리 속에 계시는 하나님을 영접하고 모시고 주 하나님과 동거하고 동행하고 동역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행하여 주시는 것이다(요 14:13). 이렇게 주 하나님 사랑 안에 들어가야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만나고 하나님과 은밀한 영적 교제를 할 수 있다(요 15:26; 행1:8; 요일 2:27).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계시는 것은 찾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만물 안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는 내 양심 속에 계시는 주님이요, 내 진리 속에 계시는 주님이요, 내 영감 속에 계시는 주님이시다. 하나님의 영, 성령은 만물 안에, 양심 안에, 진리 안에, 영감 안에 은밀히 계신다. 우리 아버지는 홀로 주권을 가지시고 전지전능하시고, 전재하시며, 무한히 초월하여 계시면서 우리의 영과 육, 금생과 내세, 생사를 책임지고 계신다.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네 아버지는 너희들의 아버지가 아니고, 너희 아버지이다. 일대일의 관계에서 네 양심 속에서 보시는 주님이 옳다 해야 하고, 진리 속에서 보시는 주님이 됐다 해야 하고, 영감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이 역사해 주셔야 한다.
중언부언 기도하지 말라 6:7, 8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상대하지 않고 말을 많이 해야 하나님이 들으시는 줄 알고 중언부언하는 외식 기도를 한다. 중언부언하는 기도는(왕상 18:25-29) 거듭 거듭하는 기도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3번이나 거듭 기도하셨다. 또 열심히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금하는 것 아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상대하지 않고 말만하면 들으시는 줄 아나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는 진실한 기도(출 32:31,32; 왕상 3:6-9; 18:36,37; 21:14-19)를 해야 한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는 ①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다. 그런데 말만 장시간 많이 하고,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헛일이다. 이것은 이방인들의 외식 기도이다. ② 주님을 만나도 정욕으로 쓸려고 잘못 구해도 응답하지 않는다(약 1:4-8; 4:1-3). ③ 주님에게 옳게 기도하는 것은 세상을 뒤로 하고 우리 마음을 깨끗이 함으로 양심을 써서 진리와 영감대로 믿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골방기도가 되어야 한다(롬 8:26). 하나님이 보시기에 필요한 것을 찾아 구해야 온전하고 구비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
하나님의 응답이 없으므로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외식 기도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진실한 기도를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에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아신다.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똑똑히 알고 내게 급하고 필요한 것을 다 아신다. 네가 기도하기 전에 네 성질도, 버릇도, 장점도, 단점도, 악독과 거짓도 아신다. 그러므로 말만하면 되는 줄로 생각하지 말라. 이것을 모르고 자기 망치는 것을 구하기 때문에 이루어 주시지 않는다. 기독교는 진실의 도이다. 기도는 전능이므로 기도의 권세와 실력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외식하는 기도를 하지 말고, 진실함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바르게 기도하라는 대상, 순서, 종류, 자신에 대해서 깨닫고 골방기도를 해야 한다.
주기도문 6:9-13
9-13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로 구속함을 받아 믿는 모든 성도들이다. 모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되어야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되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말씀과 성도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이고 하나님의 나라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외식기도와 이방인들의 중언부언 기도를 금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진실한 기도를 드리도록 교훈하여 주셨다. 기도의 대상도, 순서도 종류도 자신도 주님이 가르쳐주시는 대로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눅 11:2-4의 주기도문은 본장의 주기도문에 보충되어 우리가 바로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신다.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늘’은 높은 하늘 공중이 아니다. 하늘은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의 보좌이다. 그 이상이 없는 지극히 존귀한 위치, 전지전능의 위치, 대주재자 주권자의 위치, 창조주의 위치를 말한다. 하늘에 계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완전성, 초월성, 편재성, 무한성을 두고 말한다. 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내 개인의 아버지가 아니다. 우리 아버지라고 복수로 말씀하는 것은 예수님과 우리가 합하여 하나가 됨으로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다. 예수님과 우리와의 연결이 끊어지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멸망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화친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들이 되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대화하는 특권이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상대해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감동하시고 진리로 역사하신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지극히 크시고 완전하셔서 지혜, 능력, 사랑, 성결에 대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을 알고 믿는 만큼 기도할 자격이 있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신다. 영원자존, 전지전능, 사랑이 완전하신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들을 책임을 지고 구하는 대로 역사하여 주신다. 우리는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과 예정과 창조를 받아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난 자이다. 또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중생 성화 부활로 영화되고 영생한다. 주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거듭나서 이 세 가지 은혜와 능력으로 장성하고 영생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이 첫째로 중요하다. 기도가 우리 생활이 되어야 하고, 우리 생활이 기도가 되어야 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상대하여 기도할 때나 자기의 현실에서 신앙생활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상대관계를 바로 가져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 자체와 그 역사를 가르쳐 말한다. 자체에 있어서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이 구별되어야 하고,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은 원동이 되고 우리는 하나님에게 피동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우리의 존재와 활동이 구별됨으로 하나님께서 지극히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하고 생활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과 상호내주 동거동행 하는 것은 지극히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동이 되고 우리는 그에게 피동이 되는 신앙생활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가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해야 하고, 그것이 하나님에게 인정이 되고 합격이 되기까지 우리는 힘써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위치에 거하면 우리가 교만하게 되고 멸망하게 된다. 언제나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3) “나라이 임하옵시며,”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이 주권의지와 주권능력으로 통치하시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다. 중생된 영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고, 심령천국과 교회천국은 지금 현실에서 건설되어야 하고, 지상천국은 주님이 재림하여 오실 때 완성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은 심령천국과 교회천국과 지상천국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와 만물을 주권통치할 때에 우리가 그 영감과 진리대로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고 하나님의 의가 건설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고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면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과 찬송이 돌려지게 된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도 하나님을 모시고 에덴동산과 같은 현실로 살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그의 의가 건설되는 것도 우리의 기도가 없으면 안 된다.
4)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의지대로 주권통치가 되는 나라이다. 사람들의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 계신 삼위일체 하나님 의지 안에서 이루어지는 완전한 세계와 같이 세상의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심령의 천국이 이루어지면 교회의 천국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이 땅에서도 충만하게 된다. 다니엘도 바벨론 나라에서 천국을 이루었고, 요셉도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서 천국을 이루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면 실상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한다. 위의 세 가지 기도 제목은 하나님에게 대한 기도이다.
5)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면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이 부족함이 없게 된다. 오늘날은 우리의 현실이다. 오늘 우리가 지켜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뜻대로 현실에서 순종하면 일용할 양식은 부족함이 없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의 주권의지에 달려있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은 두 가지이다. 입으로 먹는 육의 양식뿐만 아니라 인격이 먹고 장성하는 영의 양식 곧 인격의 양식이 있다. 인격이 먹는 양식은 신령한 양식이다. 눈으로 읽어서 먹고, 귀로 들어서 먹고, 마음으로 생각해서 먹고, 몸으로 행동해서 먹는다. 심령도 힘을 얻고 장성해야 하고 육신도 힘을 얻고 장성해야 한다. 우리가 먹을 일용할 양식을 간구하는 기도를 하라고 하는 것은 그 양식이 하나님에게 주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없다.
6)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에서 “우리가” 하는 말씀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우리에게 주님이 말씀한다. 예수님의 인성 안에 신성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우리가 되어 역사하신다(창 1:26). 눅 11:4에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하여 주신 이는 신인양성일위 예수님이시다. 하나님이 우리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우리가 되어 서로 사랑하고 형제의 죄를 용서함으로 우리가 되어야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진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 형제들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과 성령의 중생으로 믿는 우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죄(赦罪), 칭의(秤義), 화친(和親), 영생(永生)의 구속을 완전히 옷을 입듯이 입었다. 은혜로 받은 이 대속구원을 감사하고 믿음으로 죄에서 벗어나 의롭게 살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에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야 하고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주권 능력이 역사해 주어야 한다. 영원하고 완전한 대속구원을 입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므로 우리가 되어야 하고, 형제도 복음을 받아 믿음으로 회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기도하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권능력으로 우리가 죄, 마귀, 사망에서 벗어나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형제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지 못한다(마 6:14-15).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이 주님의 계명이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미워함으로 죄를 범하게 되고, 죄를 범하는 우리에게는 사망이 역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형제의 허물을 용서하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도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의 아버지의 은혜 아래에 살도록 하여 주신다.
7)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우리의 현실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시련하는 현실이다. 주님이 여러 가지 현실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은 우리가 주와 같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현실에서라도 시험에 들지 아니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에게도 시험하지 아니하신다. 오직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을 받아 범죄하게 되고 사망하게 된다(약 1:2-3, 13-15).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의 욕심으로 행하지 않고 성령의 소욕으로 행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능력이 아니면 죄와 마귀와 사망을 이기는 지혜나 능력이 우리에게 없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믿음으로 승리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고 우리의 구원이 건설된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현실은 에덴동산과 같은 현실로 되지 못한다.
8)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또 우리는 악에서 벗어나 선을 행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면 피조물 중심이다. 피조물 중심은 인류 중심, 민족 중심, 국가 중심, 도덕 중심이라도 최종은 자기중심이기 되기 때문에 모두 악하다. 우리는 악에서 벗어나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은혜를 입어서 살게 된다. 하나님과의 영적 생명이 끊어지면 시간문제이지 다 사망하게 된다. 악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도 인간으로서는 악한 자를 능가할 만한 지혜나 능력을 가진 자가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은혜로 충만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이 된다.
9)“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대개는 연결구로써 영역으로는 for에 해당한다. 그 의미는 ‘왜 그런고 하니’이다. ‘오늘날 우리에게’에서부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까지가 왜 그런고 하니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있사옵나이다’ 때문이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구원하시는 주님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말씀한다. 그 이유는 주님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홀로 가지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원히 있으면 피조물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영원하고 무한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의지와 주권능력이 미치는 모든 영역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원히 역사하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며 결과이다.
사람의 과실에 대한 용서 6:14, 15
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사람의 과실에 대한 용서를 말씀한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은 그의 도성인신과 사활대속으로 사죄와 칭의와 화친과 영생을 기본적으로 다 받았다. 그래서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무두 무죄자이며, 의인이고, 화평을 누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들이며, 영생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다.
우리가 연약하여 실수를 해도 그것은 과실이다. 우리는 형제의 과실을 정죄하거나 용서할 수 있는 주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똑같이 죄인이며, 또 똑같이 의인이 되었다. 죄와 의를 구별해야 하고, 죄는 버리고 의를 건설해야 하는 우리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는 주 안에서 형제이므로 형제의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과 사랑을 받지 못한다. 형제의 과실을 용서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
형제의 과실을 우리는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가? 형제의 과실을 이해하고 따라 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도 그와 같은 과실을 경계해야 한다. 형제가 과실을 인정하고 돌이키며 다시는 그러한 과실을 범하지 않도록 기도하고 협력해야 한다. 또 돌이킬 때 용서해야 한다. 또 사랑하고 관용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금식기도 6:16-18
16-18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께서 금식기도에 대하여 말씀한다. 구약교회에는 신앙정립을 위하여 국가적인 면과 개인적인 면에서 금식이 시행되었다(레 16:29-31; 23:26-32; 민 29:7). 금식의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었다(출 24:18; 삼하 1:12; 사 58:3). 유대인들은 이러한 금식의 진정한 의미는 버리고 하나의 종교의식으로 변하므로 선지자들에게 비난을 받았다(사 58:3-7; 렘 14:12; 슥 7:5, 6).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했다. 그때 외식하는 자들은 자기는 부인하지 않고 얼굴에 슬픈 기색을 하고 얼굴을 흉하게 하며 사람들에게 금식하고 있는 것을 알리려고 했다. 이것은 자신이 종교적 열심과 율법 준행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외식하는 구제와 기도와 금식은 자기의 상을 이미 사람들에게 받았으므로 하나님에게 받을 상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서 평소와 같이 몸단장을 하므로 금식하는 모양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 자기의 죄를 찾아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므로 육체대로 행하는 행위를 금하려고 금식할 때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외식을 버리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보이도록 하라는 말씀하신다. 그러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수 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6:19-23
19-2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너희를 위하여” 말씀에서 너희는 누구인가? 중생해서 믿는 사람들은 자기를 구별해야 한다. 너희는 옛사람 자기가 아니고 새사람 자기이다. 옛사람 자기는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행하는 자기 아닌 자기이다. 참 자기를 죽인 자기이다. 육신대로 행하는 자기는 옛사람 자기이다. 새사람 자기는 성령과 피와 진리로 행하는 참 사람 자기이다.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다. 중생된 영은 성령과 피와 진리로 중생되고, 이 셋이 영원한 생명과 능력이며 보증이다. 진리로 살고 영감으로 살고 피로 사는 자는 중생된 영으로 사는 참 사람 자기이다. 속사람이 성장하는 것은 자기의 심신을 통치하는 것만큼 성장한다. 마음은 영계를 자유할 수 있는 성구이고, 몸은 물질계를 타고 다니는 성구이다. 영이 육신을 통치하는 것만큼 물질을 통치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하여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한다.
구속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주인은 구주 하나님이시다. 구주 하나님께서 대속하신 것은 다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도록 구속하셨다(고후 5:15). 구주 하나님을 위하는 중심이 아니면 자신을 위함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은 생명과 복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하는 것은 악령에게 미혹을 받아 자기의 육체를 위하는 것이 되므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참으로 자기를 위하는 것은 구주 하나님을 위하는 길 밖에 없다. 구주 하나님을 위하는 것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형제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해야 한다. 서로 사랑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
보물은 보배로운 물질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주신 물질은 우리에게 다 보물이다.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이루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보물이다. 마음, 몸, 생명, 소유, 지위, 명예, 지능 등은 다 우리가 세상에서 영원한 구원을 이루는 데 주요한 자본이다. 보물은 무너질 장막 집에 속한 것들이다. 하늘로서 오는 영원한 처소를 덧입지 못하면 다 벗어버리므로 영원한 수치가 된다(고후 5:1-7). 그래서 가진 모든 소유가 보물이다. 그러나 중생된 영은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으로 물질이 아니다.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어야 한다. 땅에 쌓아두는 것은 자신을 위하여 육체대로 사용하는 것이고, 하늘에 쌓아두는 것은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주님을 위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함으로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이것이 참으로 영원히 자신을 위하는 것이 되고 주님으로부터 받아서 영원히 만물을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할 수 있다.
자신을 위하여 육체대로 사용하는 것은 자신을 위하는 것이 되지 못하고 보물은 없어진다. 좀이 먹는다는 말은 세월이 가면 저절로 없어진다는 말이고, 동록이 해한다는 말은 죄가 역사해서 멸하여진다는 말이고,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한다는 말은 보물이 창조주 구속주 하나님의 것인데 자기 것인 줄 알고 착각하고 오산 오용으로 살다가 자기 것을 영원히 빼앗기는 것을 두고 말씀한다. 우리가 세상에서 보물을 가지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이기 때문이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야 좀도 먹지 않고, 동록도 해하지 못하고, 도적당하지도 않는다. 오늘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잘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 주신 선물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진리와 영감대로 사용하고 보관해야 한다. 이것은 마음이 하늘에 있어야 가능하다.
21-23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보물이 있는 곳에는 마음이 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하늘에 있으면 보물을 하늘에 쌓게 되고, 마음이 땅에 있으면 보물을 땅에 쌓게 된다. 골로새서 3장 1-4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라고 말씀한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았기 때문에 영생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계신 주님에게 있는 성도는 자기의 보물을 하늘에 쌓는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성도는 마음을 계속해서 하늘에 두고 준비하는 생애를 살게 된다. 우리 생명이 되신 주님이 재림하여 오실 때에 우리도 영광중에 함께 나타나게 된다.
또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면 눈이 밝아진다. 육안이 밝아진다는 말씀이 아니고, 심령의 눈이 밝아진다는 말씀이다. 마음의 눈이 밝아진다는 말씀이다. 육안이 몸에 등불이 되는 것처럼 심령의 눈이 밝아지면 자기의 생애를 지혜롭게 살게 된다. 심령이 어두우면 세상을 얼마나 어둡게 살고 가겠는가?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운 것처럼 우리에게 빛이 어두우면 그 생활의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는가? 우리에게 있는 빛은 심령의 눈 곧 양심이다. 심령이 밝으면 그의 생애는 복이 있다. 심령이 밝아지는 방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으로 주신 자유를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갈 5:1). 이 자유로 죄와 마귀와 사망의 종이 되어 살면 다시 어두움으로 들어간다(갈 5:13). 마음과 생각을 다스려 진리와 성령과 주님으로 자유하면 심령이 밝아진다(요 8:32, 36; 고후 3:17). 심령이 진리와 성령과 주님으로 자유하면 육신도 따라서 자유생활이 된다. 진리와 영감과 주님으로 자유생활하면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므로 영원한 처소를 마련하게 된다(요 14:1, 2). 다시는 육체대로 자기의 보물을 땅에 둘 자가 없다. 모두 하늘에 쌓아둔다. 하늘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고 사랑하며 그의 뜻을 찾아서 영감과 진리대로 삶으로 영원한 처소를 마련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의 심령을 깨끗하고 밝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딤전 4:5).내게 있는 어떤 보물이든지 하늘에 쌓으면 심령이 밝아지고, 땅에 쌓으면 심령이 어두워진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그 나라와 의를 건설하면 심령이 밝아진다. 심령이 밝아지는 것이 돈보다 낫고, 지식이나 지혜보다 낫다. 건강보다 심령이 밝은 것이 낫다.
두 주인 6:24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타락한 사람은 악령에게 미혹을 받아 자기중심의 사람이 되어 자기를 위하여 생각하고 행동한다. 주권주재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어떤 피조물이 자기를 복되게 할 수 있다고 하여 그것을 두려워하고 섬기며 따라서 살게 된다.
중생해서 믿는 사람이라도 인간의 생사화복 존귀비천이 하나님에게 주권되어 있는 줄 알면서도 옛사람이 되면 피조물을 하나님 같이 섬기게 되고, 새사람이 되면 하나님을 자기의 주인으로 섬기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한다. 하나님도 섬기고 피조물도 섬긴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귀 생각이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피조물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귀의 생각이다. 하나님도 중하지만 피조물도 중하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마귀 생각이다. 성령의 생각이 아니다.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지 못한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는 말씀은 하나님 한 분에게 모든 것이 주권되어 있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구속주시기 때문에 주권주재자시다.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 사람을 복되게 할 수 없다. 여기 재물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물질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을 대표해서 말씀한다. 섬기는 것도 하나님 한 분만 섬겨야 한다. 그러면 주권자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주권 주재하여 하나님 섬기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좋은 자본이 되게 하여 주신다.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 한 분만을 섬겨야 한다. 그러면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도 사랑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섭리하여 주신다.
중생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게 주권을 돌리고 하나님의 말씀 곧 영감과 진리대로 순종하는 믿음 생활을 해야 한다. 섬기는 것도 하나님 한 분만 섬겨야 하고,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 한 분만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을 중하게 여기면 피조물을 경히 여기게 되고, 피조물을 중하게 여기면 하나님을 경히 여기는 것이 진리이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피조물도 사랑할 수는 없다. 우리가 주권주재자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은 피조물을 우리 위하여 섭리하신다.
의식주와 이방인 6:25-32,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 하냐
그러므로 우리는 의식주를 위하여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의식주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은 보물을 땅에 쌓아두는 방편이 된다. 목숨이 먹는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한 것은 하나님께서 피조물보다 중하게 창조하셨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구속하셨기 때문이다. 타락한 사람은 구주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피조물을 소망하고 의지하게 된다. 중생된 사람이라도 구주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피조물을 중하게 여기고 육체대로 행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백성을 위하여 피조물을 주권 개별 섭리하신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다. 땅 위의 나라는 백성에게 주권을 두고 인본주의 정치를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백성에게 주권이 없고 하나님 한 분에게 주권이 있다. 영원자존하시고 사랑이 불변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의지대로 섭리되는 것은 피조물에게 영원한 만족과 기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 그 나라의 의를 이루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義)의 나라이다.
하나님이 도성인신하시고 사활로 대속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신 것이다. 죄와 마귀와 사망을 완전히 영원히 이기신 것은 구주 하나님에게 홀로 주권되어 있다. 주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므로 자기의 현실에서 구주 하나님에게 주권을 돌리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의식주는 염려하지 않게 된다. 의식주를 염려하는 것은 자기에게 주권을 두고 자기의 욕심대로 하려고 하는 옛 사람이다.
26-27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우리가 공중의 새를 보면 잘 깨달아 알 수 있다. 공중의 새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짐승이다. 먹이를 위하여 심거나 거두거나 창고에 모아 들이는 일을 하지 아니 한다. 의식주를 위하여 일하지 아니 해도 하나님께서 먹이고 자라게 하며 번성하게 하신다.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자유로이 먹고 쉬며 살아가는 법칙을 하나님이 주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생애 법칙대로 사는 그것이 사는 법이다. 만일 물 속에 자유롭게 다니는 물고기와 같이 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물 속에 들어가면 살지 못하고 죽는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공중의 새보다 더 귀하게 지음을 받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들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다. 우리가 염려하여 키를 한 자나 더 크게 하려고 한다고 더 크는 일이 없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권의지로 섭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믿고 사는 것이 영생하는 법이다.
28-30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몸이 의복보다 중하다. 우리의 의복을 위하여 염려할 필요가 없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먹이시며 입히신다. 들의 백합화를 보면 깨달아 알 수 있다. 어떻게 자라며 보기에 아름다운가?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는데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이 꽃이 더 아름답고 영광스럽지 않는가? 우리는 만물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심령이 되어 있으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어두운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공중의 새보다 더 귀하고, 들의 백합화보다 더 귀하다. 공중의 새도 먹이고 기르시며 들의 백합화도 자라게 하시는데 하물며 우리를 먹이고 입히지 않겠는가? 우리를 먹이고 입히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위를 책임지시고 의롭게 하시며 영화롭게 하신다. 우리에게 흰옷을 입혀주시고 영원토록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신다. 우리의 행위는 영원한 자기의 옷과 같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에게 주권을 돌리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먹고 입고 일하면 우리의 의식주를 책임지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위를 책임지시고 영원토록 영화롭게 하신다.
31-32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의식주 때문에 욕심을 내거나 염려하여 시험에 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러한 염려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믿지 아니 하는 사람들이 염려하고 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의식주 때문에 일하지 말라고 하는가? 일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못한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면 떡도 되고, 옷도 되고, 집도 된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6:33-34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세상을 사는 것은 주권주재자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그 의를 건설하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 된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국민에게 주권이 있지마는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 완전한 나라로써 하나님에게 주권이 있다. 하나님의 주권의지를 따라서 믿음으로 순종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건설하면, 하나님께서 주권능력으로 역사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아시고 더하여 주신다. 학생이 공부하는 것을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공부해서 의를 건설하면 하나님의 지능으로 공부하는 것이 되고 학력은 점점 더하여 갈 것이다. 농부가 농사를 해도 하나님의 주권의지를 따라서 농사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고 의를 이루는 것이 됨으로 농사한 그것으로 양식도 되고 의복도 된다. 좋은 집도 마련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하여 주권 주재하여 주신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그러므로 1) 우리는 내일 해야 하는 일 때문에 염려할 것은 없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해야 한다. 미리 준비하는 것은 내일 일이 아니고 오늘 할 일이다. 오늘 해야 하는 일에 대하여 온전함을 이루는 것은 오늘 하루 일에 족하다. 오늘 내 마음과 힘과 목숨과 뜻을 다 하지 아니 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건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권의지를 따라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일에 다해야 온전함을 이룬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면 마음이 나뉘고 오늘 할 일을 다 하지 못한다. 2) 오늘 우리는 보물을 하늘에 저축해야 심령이 밝아지고, 3) 심령이 밝아져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4) 하나님을 왕으로 모셔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건설하고, 5)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루는 일에 전력하는 의식주 생활은 한 날 괴로움에 족하다.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것을 하나님은 다 아시고 더하여 주신다. 이것이 오 단계 신앙이다. 지상에서 오 단계 신앙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룬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새 창조할 때 새 창조되어 나온다. 이것이 부활한 자의 영광이다.
제목: 천국의 새 생활
요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3절)
5-7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이다. 그가 구약의 약속과 예언을 성취하시고 구속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시민으로서 영생하는 새 계명을 주신 것이다.
1절은 외식하지 말라, 2-4절은 구제에 대한 바른 자세, 5절은 조심해야 할 외식기도, 7-8절은 중언부언 기도하지 말라, 9-13절은 주기도문, 14-15절은 사람의 과실에 대한 용서, 16-18절은 금식기도, 19-23절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24절은 두 주인, 25-32절은 의식주와 이방인, 33-34절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한다.
외식하지 말라 6:1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성도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바라보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천국시민이다(빌 3:20; 요 1:12). 이 시민권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는 권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택함과 창조와 계약과 구속적으로 존귀하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다른 모든 피조물과 다르게 특수 창조를 받았다.
그리스도인은 사람과 관계를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한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서 바른 관계를 가져야 한다. 사람에게 자기의 의를 나타내는 것을 주의하고, 하나님의 의를 증거하여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의로 의인이 되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서 천국을 건설하고 의를 이루어야 한다. 천국은 의의 나라이므로 성도의 생활은 의인 생활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믿음으로 의로운 생활을 할 때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 앞에서 하지 말라고 주의하셨다. 사람 앞에서 의를 행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한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이미 칭찬과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는 의에 대한 상은 천국에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원 완전한 상급을 받도록 되어있다.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제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사람에게 의를 행할 때에 사람 앞에서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은밀히 해야 한다. 하나님은 외모로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신다. 하나님에게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해야 한다.
구제에 대한 바른 자세 6:2-4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사람에게 칭찬과 대우와 영광을 얻기 위하여 외식하는 구제를 하지 말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실한 구제를 하라 명령하신다. 구제는 돈으로, 인력으로, 지혜로, 연보로, 기도로 하여 형제를 죄에서 구원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게 하는 것이 구제이다. 구원이 목적 안 되고 사람만 돕고 일만 도우면 다 외식 구제이다. 외식 구제에는 아버지께서 주시는 상이 없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를 보고 구제하는 것이 진실한 구제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 돕는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만족하시고, 하나님도 함께 도우시고 계속 은혜를 주셔야 된다. 도와서 구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구제하는 것이 형제의 구원에 유익이 되어야 하고, 내게도 유익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도 기뻐하시므로 책임질 수 있는 구제가 되어야 진실한 구제이다.
3-4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이 말씀은 구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씀이다. 오른 손도 왼손도 알 필요가 없고 하나님이 아시고 구제하라고 하시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씀이다. 구제할 수 없는 것은 부정하거나 불의하면 할 수 없고, 외식하는 구제 곧 하나님 없이 사람만을 생각하고 위하는 외식은 하나님의 돕는 역사가 없기 때문에 결국 헛일이 되고 만다. 외식하는 구제는 삼가고 은밀한 구제를 놓치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의를 행하는 것이 됨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이 있다.
조심해야 할 외식기도 6:5
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주님은 외식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금하셨다. 유대인들의 외식하는 기도는 사람들에게 저들의 열심과 경건을 보이려고 큰 거리와 회당에서 서서 기도하는 것이고, 이방인들의 외식하는 기도는 중언부언하여 주님은 상대하지 않고 말만 많이 하면 들으시는 줄 알고 기도하는 외식을 조심하라고 교훈하여 주셨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외식기도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이 외식 기도이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씩 기도를 했다(단6:10; 행10:9; 삼상1:26; 막11:25).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큰 거리나 회당에 가서 서서 기도를 했다. 기도의 장소와 모습과 열심을 말씀한 것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도했기 때문에 저희는 이미 상을 받았다고 말씀한다. 상은 기도의 효력이다. 사람들이 봐주고, 알아주고, 인정하여 주는 것이 기도의 효력이다. 구제가 사람에게 대한 의이면, 기도는 하나님에게 대한 의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진실한 기도라야 한다. 6절에,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외식 기도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성경에 ‘하나님은 너희와 항상 함께 계신다.’ ‘너희 마음과 뜻과 중심을 살피신다.’ 말씀대로 알고 인정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다. 기도할 때에 기도의 대상인 주님을 잊어버리거나, 어떤 피조물을 상대해서 기도하면 그것은 외식 기도이다. 기도는 향과 같아서 모든 악취를 제거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둘이 앉아서 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잊어버리고 사람들만 의식하고 자기의 열심과 경건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도하는 외식을 벗어버려야 한다.
진실한 기도를 하는 것은 ①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마주 상대하는 기도가 제일 중요하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고 바라보며 받은 은혜를 깨달아 감사하고, ② 상대가 하나님이시므로 말씀으로 자기를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이 내게 대해서 섭섭해 하시는 것을 찾아 회개하는 것이 주님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회개하므로 자기의 심령을 깨끗하게 해야 성령이 감동하시고 진리로 가르쳐 주신다. ③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목적으로 의논하여 아뢰고(요 14:13), 필요한 것을 찾아 간구하면 주님은 응답하신다. 주님의 응답은 성령의 영감과 진리를 깨달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주님의 응답을 받는 것이다.
골방 기도 6:6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주님이 “너는” 하는 것은 기도는 일대 일로 대화하는 것이다. 외식하는 기도는 마귀나 만나지 하나님은 만나지 못한다. 기도하는 것은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고 하나님이 내게 어떻게 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기도요, 하나님만을 상대해서 하나님과 서로 대화하는 것이 기도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껍데기뿐이지 알맹이 기도는 안 된다.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문을 닫고 하는 것은 세상이 보이지 않도록 세상을 뒤로 두라는 말이다. 골방에 들어가는 것은 ① 세상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피조물을 창조주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거나 사모하는 자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 현실로 인도하시고 홀로 주권하시고 주재하시는 하나님을 소망하고 믿음으로 찾고 부르짖어야 한다(골 3:1-4; 벧전 3:21). 만물 안에 계시고 만물과 함께 계시고 만물 위에 계시는 주 하나님을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 만물을 창조해 주시고 만물 안에 계시고 홀로 주권주재 하시는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한다. ②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진리로 인도하시는 주 하나님에게 회개 기도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 안에 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자기 안에 계신다. 자신을 성전 삼으시고 자기 안에 계신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자기의 양심 속에 들어가야 하나님을 만난다(벧전 3:21). 자기의 양심은 마음의 빛이다. 자기가 아는 대로는 자기의 마음을 옳고 바르고 깨끗하게 해야 한다. 허영, 허욕, 거짓, 교만을 씻어버리고 흠과 점이 없는 착한 양심을 가져야 하나님을 상대할 수 있다. 자기의 신앙양심 속에 들어가야 한다. ③ 또 성령의 감동하시는 영감 안에 계신 하나님을 찾아 만나야 한다. 자기의 영감과 진리 속에 들어가는 것이 골방에 들어가는 것이다(요15:10). 돈을 탐하는 사람에게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말씀이 자기의 진리이고, 부모에게 불효하는 사람에게는 오 계명이 자기의 진리이다. 음행하는 사람에게는 몇 계명이 자기의 진리입니까? 칠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칭의를 벗지 않고 입고 있는 자이다. 그래서 그 안에 주 하나님이 내주하시고 은혜와 복으로 역사하여 주신다. ④ 골방에 들어가는 것은 만물 속에 계시고, 자기의 신앙양심 속에 계시고, 자기의 영감과 진리 속에 계시는 하나님을 영접하고 모시고 주 하나님과 동거하고 동행하고 동역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행하여 주시는 것이다(요 14:13). 이렇게 주 하나님 사랑 안에 들어가야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만나고 하나님과 은밀한 영적 교제를 할 수 있다(요 15:26; 행1:8; 요일 2:27).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계시는 것은 찾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만물 안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는 내 양심 속에 계시는 주님이요, 내 진리 속에 계시는 주님이요, 내 영감 속에 계시는 주님이시다. 하나님의 영, 성령은 만물 안에, 양심 안에, 진리 안에, 영감 안에 은밀히 계신다. 우리 아버지는 홀로 주권을 가지시고 전지전능하시고, 전재하시며, 무한히 초월하여 계시면서 우리의 영과 육, 금생과 내세, 생사를 책임지고 계신다.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네 아버지는 너희들의 아버지가 아니고, 너희 아버지이다. 일대일의 관계에서 네 양심 속에서 보시는 주님이 옳다 해야 하고, 진리 속에서 보시는 주님이 됐다 해야 하고, 영감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이 역사해 주셔야 한다.
중언부언 기도하지 말라 6:7, 8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상대하지 않고 말을 많이 해야 하나님이 들으시는 줄 알고 중언부언하는 외식 기도를 한다. 중언부언하는 기도는(왕상 18:25-29) 거듭 거듭하는 기도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3번이나 거듭 기도하셨다. 또 열심히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금하는 것 아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상대하지 않고 말만하면 들으시는 줄 아나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는 진실한 기도(출 32:31,32; 왕상 3:6-9; 18:36,37; 21:14-19)를 해야 한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는 ①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다. 그런데 말만 장시간 많이 하고,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헛일이다. 이것은 이방인들의 외식 기도이다. ② 주님을 만나도 정욕으로 쓸려고 잘못 구해도 응답하지 않는다(약 1:4-8; 4:1-3). ③ 주님에게 옳게 기도하는 것은 세상을 뒤로 하고 우리 마음을 깨끗이 함으로 양심을 써서 진리와 영감대로 믿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골방기도가 되어야 한다(롬 8:26). 하나님이 보시기에 필요한 것을 찾아 구해야 온전하고 구비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
하나님의 응답이 없으므로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외식 기도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진실한 기도를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에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아신다.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똑똑히 알고 내게 급하고 필요한 것을 다 아신다. 네가 기도하기 전에 네 성질도, 버릇도, 장점도, 단점도, 악독과 거짓도 아신다. 그러므로 말만하면 되는 줄로 생각하지 말라. 이것을 모르고 자기 망치는 것을 구하기 때문에 이루어 주시지 않는다. 기독교는 진실의 도이다. 기도는 전능이므로 기도의 권세와 실력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외식하는 기도를 하지 말고, 진실함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바르게 기도하라는 대상, 순서, 종류, 자신에 대해서 깨닫고 골방기도를 해야 한다.
주기도문 6:9-13
9-13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로 구속함을 받아 믿는 모든 성도들이다. 모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되어야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되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말씀과 성도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이고 하나님의 나라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외식기도와 이방인들의 중언부언 기도를 금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진실한 기도를 드리도록 교훈하여 주셨다. 기도의 대상도, 순서도 종류도 자신도 주님이 가르쳐주시는 대로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눅 11:2-4의 주기도문은 본장의 주기도문에 보충되어 우리가 바로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신다.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늘’은 높은 하늘 공중이 아니다. 하늘은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의 보좌이다. 그 이상이 없는 지극히 존귀한 위치, 전지전능의 위치, 대주재자 주권자의 위치, 창조주의 위치를 말한다. 하늘에 계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완전성, 초월성, 편재성, 무한성을 두고 말한다. 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내 개인의 아버지가 아니다. 우리 아버지라고 복수로 말씀하는 것은 예수님과 우리가 합하여 하나가 됨으로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다. 예수님과 우리와의 연결이 끊어지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멸망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화친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들이 되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대화하는 특권이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상대해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감동하시고 진리로 역사하신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지극히 크시고 완전하셔서 지혜, 능력, 사랑, 성결에 대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을 알고 믿는 만큼 기도할 자격이 있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신다. 영원자존, 전지전능, 사랑이 완전하신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들을 책임을 지고 구하는 대로 역사하여 주신다. 우리는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과 예정과 창조를 받아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난 자이다. 또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중생 성화 부활로 영화되고 영생한다. 주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거듭나서 이 세 가지 은혜와 능력으로 장성하고 영생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이 첫째로 중요하다. 기도가 우리 생활이 되어야 하고, 우리 생활이 기도가 되어야 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상대하여 기도할 때나 자기의 현실에서 신앙생활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상대관계를 바로 가져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 자체와 그 역사를 가르쳐 말한다. 자체에 있어서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이 구별되어야 하고,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은 원동이 되고 우리는 하나님에게 피동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우리의 존재와 활동이 구별됨으로 하나님께서 지극히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하고 생활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과 상호내주 동거동행 하는 것은 지극히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동이 되고 우리는 그에게 피동이 되는 신앙생활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가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해야 하고, 그것이 하나님에게 인정이 되고 합격이 되기까지 우리는 힘써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위치에 거하면 우리가 교만하게 되고 멸망하게 된다. 언제나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3) “나라이 임하옵시며,”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이 주권의지와 주권능력으로 통치하시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다. 중생된 영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고, 심령천국과 교회천국은 지금 현실에서 건설되어야 하고, 지상천국은 주님이 재림하여 오실 때 완성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은 심령천국과 교회천국과 지상천국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와 만물을 주권통치할 때에 우리가 그 영감과 진리대로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고 하나님의 의가 건설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고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면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과 찬송이 돌려지게 된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도 하나님을 모시고 에덴동산과 같은 현실로 살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그의 의가 건설되는 것도 우리의 기도가 없으면 안 된다.
4)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의지대로 주권통치가 되는 나라이다. 사람들의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 계신 삼위일체 하나님 의지 안에서 이루어지는 완전한 세계와 같이 세상의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심령의 천국이 이루어지면 교회의 천국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이 땅에서도 충만하게 된다. 다니엘도 바벨론 나라에서 천국을 이루었고, 요셉도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서 천국을 이루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면 실상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한다. 위의 세 가지 기도 제목은 하나님에게 대한 기도이다.
5)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면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이 부족함이 없게 된다. 오늘날은 우리의 현실이다. 오늘 우리가 지켜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뜻대로 현실에서 순종하면 일용할 양식은 부족함이 없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의 주권의지에 달려있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은 두 가지이다. 입으로 먹는 육의 양식뿐만 아니라 인격이 먹고 장성하는 영의 양식 곧 인격의 양식이 있다. 인격이 먹는 양식은 신령한 양식이다. 눈으로 읽어서 먹고, 귀로 들어서 먹고, 마음으로 생각해서 먹고, 몸으로 행동해서 먹는다. 심령도 힘을 얻고 장성해야 하고 육신도 힘을 얻고 장성해야 한다. 우리가 먹을 일용할 양식을 간구하는 기도를 하라고 하는 것은 그 양식이 하나님에게 주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없다.
6)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에서 “우리가” 하는 말씀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우리에게 주님이 말씀한다. 예수님의 인성 안에 신성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우리가 되어 역사하신다(창 1:26). 눅 11:4에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하여 주신 이는 신인양성일위 예수님이시다. 하나님이 우리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우리가 되어 서로 사랑하고 형제의 죄를 용서함으로 우리가 되어야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진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 형제들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과 성령의 중생으로 믿는 우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죄(赦罪), 칭의(秤義), 화친(和親), 영생(永生)의 구속을 완전히 옷을 입듯이 입었다. 은혜로 받은 이 대속구원을 감사하고 믿음으로 죄에서 벗어나 의롭게 살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에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야 하고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주권 능력이 역사해 주어야 한다. 영원하고 완전한 대속구원을 입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므로 우리가 되어야 하고, 형제도 복음을 받아 믿음으로 회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기도하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권능력으로 우리가 죄, 마귀, 사망에서 벗어나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형제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지 못한다(마 6:14-15).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이 주님의 계명이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미워함으로 죄를 범하게 되고, 죄를 범하는 우리에게는 사망이 역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형제의 허물을 용서하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도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의 아버지의 은혜 아래에 살도록 하여 주신다.
7)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우리의 현실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시련하는 현실이다. 주님이 여러 가지 현실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은 우리가 주와 같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현실에서라도 시험에 들지 아니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에게도 시험하지 아니하신다. 오직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을 받아 범죄하게 되고 사망하게 된다(약 1:2-3, 13-15).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의 욕심으로 행하지 않고 성령의 소욕으로 행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능력이 아니면 죄와 마귀와 사망을 이기는 지혜나 능력이 우리에게 없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믿음으로 승리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고 우리의 구원이 건설된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현실은 에덴동산과 같은 현실로 되지 못한다.
8)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또 우리는 악에서 벗어나 선을 행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면 피조물 중심이다. 피조물 중심은 인류 중심, 민족 중심, 국가 중심, 도덕 중심이라도 최종은 자기중심이기 되기 때문에 모두 악하다. 우리는 악에서 벗어나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은혜를 입어서 살게 된다. 하나님과의 영적 생명이 끊어지면 시간문제이지 다 사망하게 된다. 악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도 인간으로서는 악한 자를 능가할 만한 지혜나 능력을 가진 자가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은혜로 충만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이 된다.
9)“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대개는 연결구로써 영역으로는 for에 해당한다. 그 의미는 ‘왜 그런고 하니’이다. ‘오늘날 우리에게’에서부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까지가 왜 그런고 하니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있사옵나이다’ 때문이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구원하시는 주님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말씀한다. 그 이유는 주님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홀로 가지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원히 있으면 피조물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영원하고 무한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의지와 주권능력이 미치는 모든 영역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원히 역사하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며 결과이다.
사람의 과실에 대한 용서 6:14, 15
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사람의 과실에 대한 용서를 말씀한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은 그의 도성인신과 사활대속으로 사죄와 칭의와 화친과 영생을 기본적으로 다 받았다. 그래서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무두 무죄자이며, 의인이고, 화평을 누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들이며, 영생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다.
우리가 연약하여 실수를 해도 그것은 과실이다. 우리는 형제의 과실을 정죄하거나 용서할 수 있는 주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똑같이 죄인이며, 또 똑같이 의인이 되었다. 죄와 의를 구별해야 하고, 죄는 버리고 의를 건설해야 하는 우리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는 주 안에서 형제이므로 형제의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과 사랑을 받지 못한다. 형제의 과실을 용서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
형제의 과실을 우리는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가? 형제의 과실을 이해하고 따라 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도 그와 같은 과실을 경계해야 한다. 형제가 과실을 인정하고 돌이키며 다시는 그러한 과실을 범하지 않도록 기도하고 협력해야 한다. 또 돌이킬 때 용서해야 한다. 또 사랑하고 관용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금식기도 6:16-18
16-18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께서 금식기도에 대하여 말씀한다. 구약교회에는 신앙정립을 위하여 국가적인 면과 개인적인 면에서 금식이 시행되었다(레 16:29-31; 23:26-32; 민 29:7). 금식의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었다(출 24:18; 삼하 1:12; 사 58:3). 유대인들은 이러한 금식의 진정한 의미는 버리고 하나의 종교의식으로 변하므로 선지자들에게 비난을 받았다(사 58:3-7; 렘 14:12; 슥 7:5, 6).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했다. 그때 외식하는 자들은 자기는 부인하지 않고 얼굴에 슬픈 기색을 하고 얼굴을 흉하게 하며 사람들에게 금식하고 있는 것을 알리려고 했다. 이것은 자신이 종교적 열심과 율법 준행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외식하는 구제와 기도와 금식은 자기의 상을 이미 사람들에게 받았으므로 하나님에게 받을 상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서 평소와 같이 몸단장을 하므로 금식하는 모양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 자기의 죄를 찾아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므로 육체대로 행하는 행위를 금하려고 금식할 때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외식을 버리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보이도록 하라는 말씀하신다. 그러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수 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6:19-23
19-2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너희를 위하여” 말씀에서 너희는 누구인가? 중생해서 믿는 사람들은 자기를 구별해야 한다. 너희는 옛사람 자기가 아니고 새사람 자기이다. 옛사람 자기는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행하는 자기 아닌 자기이다. 참 자기를 죽인 자기이다. 육신대로 행하는 자기는 옛사람 자기이다. 새사람 자기는 성령과 피와 진리로 행하는 참 사람 자기이다.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다. 중생된 영은 성령과 피와 진리로 중생되고, 이 셋이 영원한 생명과 능력이며 보증이다. 진리로 살고 영감으로 살고 피로 사는 자는 중생된 영으로 사는 참 사람 자기이다. 속사람이 성장하는 것은 자기의 심신을 통치하는 것만큼 성장한다. 마음은 영계를 자유할 수 있는 성구이고, 몸은 물질계를 타고 다니는 성구이다. 영이 육신을 통치하는 것만큼 물질을 통치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하여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한다.
구속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주인은 구주 하나님이시다. 구주 하나님께서 대속하신 것은 다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도록 구속하셨다(고후 5:15). 구주 하나님을 위하는 중심이 아니면 자신을 위함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은 생명과 복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하는 것은 악령에게 미혹을 받아 자기의 육체를 위하는 것이 되므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참으로 자기를 위하는 것은 구주 하나님을 위하는 길 밖에 없다. 구주 하나님을 위하는 것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형제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해야 한다. 서로 사랑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
보물은 보배로운 물질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주신 물질은 우리에게 다 보물이다.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이루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보물이다. 마음, 몸, 생명, 소유, 지위, 명예, 지능 등은 다 우리가 세상에서 영원한 구원을 이루는 데 주요한 자본이다. 보물은 무너질 장막 집에 속한 것들이다. 하늘로서 오는 영원한 처소를 덧입지 못하면 다 벗어버리므로 영원한 수치가 된다(고후 5:1-7). 그래서 가진 모든 소유가 보물이다. 그러나 중생된 영은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으로 물질이 아니다.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어야 한다. 땅에 쌓아두는 것은 자신을 위하여 육체대로 사용하는 것이고, 하늘에 쌓아두는 것은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주님을 위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함으로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이것이 참으로 영원히 자신을 위하는 것이 되고 주님으로부터 받아서 영원히 만물을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할 수 있다.
자신을 위하여 육체대로 사용하는 것은 자신을 위하는 것이 되지 못하고 보물은 없어진다. 좀이 먹는다는 말은 세월이 가면 저절로 없어진다는 말이고, 동록이 해한다는 말은 죄가 역사해서 멸하여진다는 말이고,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한다는 말은 보물이 창조주 구속주 하나님의 것인데 자기 것인 줄 알고 착각하고 오산 오용으로 살다가 자기 것을 영원히 빼앗기는 것을 두고 말씀한다. 우리가 세상에서 보물을 가지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이기 때문이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야 좀도 먹지 않고, 동록도 해하지 못하고, 도적당하지도 않는다. 오늘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잘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 주신 선물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진리와 영감대로 사용하고 보관해야 한다. 이것은 마음이 하늘에 있어야 가능하다.
21-23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보물이 있는 곳에는 마음이 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하늘에 있으면 보물을 하늘에 쌓게 되고, 마음이 땅에 있으면 보물을 땅에 쌓게 된다. 골로새서 3장 1-4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라고 말씀한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았기 때문에 영생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계신 주님에게 있는 성도는 자기의 보물을 하늘에 쌓는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성도는 마음을 계속해서 하늘에 두고 준비하는 생애를 살게 된다. 우리 생명이 되신 주님이 재림하여 오실 때에 우리도 영광중에 함께 나타나게 된다.
또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면 눈이 밝아진다. 육안이 밝아진다는 말씀이 아니고, 심령의 눈이 밝아진다는 말씀이다. 마음의 눈이 밝아진다는 말씀이다. 육안이 몸에 등불이 되는 것처럼 심령의 눈이 밝아지면 자기의 생애를 지혜롭게 살게 된다. 심령이 어두우면 세상을 얼마나 어둡게 살고 가겠는가?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운 것처럼 우리에게 빛이 어두우면 그 생활의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는가? 우리에게 있는 빛은 심령의 눈 곧 양심이다. 심령이 밝으면 그의 생애는 복이 있다. 심령이 밝아지는 방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으로 주신 자유를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갈 5:1). 이 자유로 죄와 마귀와 사망의 종이 되어 살면 다시 어두움으로 들어간다(갈 5:13). 마음과 생각을 다스려 진리와 성령과 주님으로 자유하면 심령이 밝아진다(요 8:32, 36; 고후 3:17). 심령이 진리와 성령과 주님으로 자유하면 육신도 따라서 자유생활이 된다. 진리와 영감과 주님으로 자유생활하면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므로 영원한 처소를 마련하게 된다(요 14:1, 2). 다시는 육체대로 자기의 보물을 땅에 둘 자가 없다. 모두 하늘에 쌓아둔다. 하늘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고 사랑하며 그의 뜻을 찾아서 영감과 진리대로 삶으로 영원한 처소를 마련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의 심령을 깨끗하고 밝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딤전 4:5).내게 있는 어떤 보물이든지 하늘에 쌓으면 심령이 밝아지고, 땅에 쌓으면 심령이 어두워진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그 나라와 의를 건설하면 심령이 밝아진다. 심령이 밝아지는 것이 돈보다 낫고, 지식이나 지혜보다 낫다. 건강보다 심령이 밝은 것이 낫다.
두 주인 6:24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타락한 사람은 악령에게 미혹을 받아 자기중심의 사람이 되어 자기를 위하여 생각하고 행동한다. 주권주재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어떤 피조물이 자기를 복되게 할 수 있다고 하여 그것을 두려워하고 섬기며 따라서 살게 된다.
중생해서 믿는 사람이라도 인간의 생사화복 존귀비천이 하나님에게 주권되어 있는 줄 알면서도 옛사람이 되면 피조물을 하나님 같이 섬기게 되고, 새사람이 되면 하나님을 자기의 주인으로 섬기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한다. 하나님도 섬기고 피조물도 섬긴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귀 생각이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피조물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귀의 생각이다. 하나님도 중하지만 피조물도 중하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마귀 생각이다. 성령의 생각이 아니다.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지 못한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는 말씀은 하나님 한 분에게 모든 것이 주권되어 있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구속주시기 때문에 주권주재자시다.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 사람을 복되게 할 수 없다. 여기 재물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물질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을 대표해서 말씀한다. 섬기는 것도 하나님 한 분만 섬겨야 한다. 그러면 주권자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주권 주재하여 하나님 섬기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좋은 자본이 되게 하여 주신다.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 한 분만을 섬겨야 한다. 그러면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도 사랑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섭리하여 주신다.
중생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게 주권을 돌리고 하나님의 말씀 곧 영감과 진리대로 순종하는 믿음 생활을 해야 한다. 섬기는 것도 하나님 한 분만 섬겨야 하고,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 한 분만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을 중하게 여기면 피조물을 경히 여기게 되고, 피조물을 중하게 여기면 하나님을 경히 여기는 것이 진리이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피조물도 사랑할 수는 없다. 우리가 주권주재자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은 피조물을 우리 위하여 섭리하신다.
의식주와 이방인 6:25-32,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 하냐
그러므로 우리는 의식주를 위하여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의식주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은 보물을 땅에 쌓아두는 방편이 된다. 목숨이 먹는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한 것은 하나님께서 피조물보다 중하게 창조하셨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구속하셨기 때문이다. 타락한 사람은 구주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피조물을 소망하고 의지하게 된다. 중생된 사람이라도 구주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피조물을 중하게 여기고 육체대로 행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백성을 위하여 피조물을 주권 개별 섭리하신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다. 땅 위의 나라는 백성에게 주권을 두고 인본주의 정치를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백성에게 주권이 없고 하나님 한 분에게 주권이 있다. 영원자존하시고 사랑이 불변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의지대로 섭리되는 것은 피조물에게 영원한 만족과 기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 그 나라의 의를 이루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義)의 나라이다.
하나님이 도성인신하시고 사활로 대속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신 것이다. 죄와 마귀와 사망을 완전히 영원히 이기신 것은 구주 하나님에게 홀로 주권되어 있다. 주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므로 자기의 현실에서 구주 하나님에게 주권을 돌리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의식주는 염려하지 않게 된다. 의식주를 염려하는 것은 자기에게 주권을 두고 자기의 욕심대로 하려고 하는 옛 사람이다.
26-27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우리가 공중의 새를 보면 잘 깨달아 알 수 있다. 공중의 새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짐승이다. 먹이를 위하여 심거나 거두거나 창고에 모아 들이는 일을 하지 아니 한다. 의식주를 위하여 일하지 아니 해도 하나님께서 먹이고 자라게 하며 번성하게 하신다.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자유로이 먹고 쉬며 살아가는 법칙을 하나님이 주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생애 법칙대로 사는 그것이 사는 법이다. 만일 물 속에 자유롭게 다니는 물고기와 같이 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물 속에 들어가면 살지 못하고 죽는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공중의 새보다 더 귀하게 지음을 받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들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다. 우리가 염려하여 키를 한 자나 더 크게 하려고 한다고 더 크는 일이 없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권의지로 섭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믿고 사는 것이 영생하는 법이다.
28-30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몸이 의복보다 중하다. 우리의 의복을 위하여 염려할 필요가 없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먹이시며 입히신다. 들의 백합화를 보면 깨달아 알 수 있다. 어떻게 자라며 보기에 아름다운가?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는데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이 꽃이 더 아름답고 영광스럽지 않는가? 우리는 만물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심령이 되어 있으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어두운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공중의 새보다 더 귀하고, 들의 백합화보다 더 귀하다. 공중의 새도 먹이고 기르시며 들의 백합화도 자라게 하시는데 하물며 우리를 먹이고 입히지 않겠는가? 우리를 먹이고 입히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위를 책임지시고 의롭게 하시며 영화롭게 하신다. 우리에게 흰옷을 입혀주시고 영원토록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신다. 우리의 행위는 영원한 자기의 옷과 같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에게 주권을 돌리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먹고 입고 일하면 우리의 의식주를 책임지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위를 책임지시고 영원토록 영화롭게 하신다.
31-32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의식주 때문에 욕심을 내거나 염려하여 시험에 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러한 염려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믿지 아니 하는 사람들이 염려하고 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의식주 때문에 일하지 말라고 하는가? 일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못한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면 떡도 되고, 옷도 되고, 집도 된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6:33-34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세상을 사는 것은 주권주재자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그 의를 건설하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 된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국민에게 주권이 있지마는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 완전한 나라로써 하나님에게 주권이 있다. 하나님의 주권의지를 따라서 믿음으로 순종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건설하면, 하나님께서 주권능력으로 역사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아시고 더하여 주신다. 학생이 공부하는 것을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공부해서 의를 건설하면 하나님의 지능으로 공부하는 것이 되고 학력은 점점 더하여 갈 것이다. 농부가 농사를 해도 하나님의 주권의지를 따라서 농사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고 의를 이루는 것이 됨으로 농사한 그것으로 양식도 되고 의복도 된다. 좋은 집도 마련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하여 주권 주재하여 주신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그러므로 1) 우리는 내일 해야 하는 일 때문에 염려할 것은 없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해야 한다. 미리 준비하는 것은 내일 일이 아니고 오늘 할 일이다. 오늘 해야 하는 일에 대하여 온전함을 이루는 것은 오늘 하루 일에 족하다. 오늘 내 마음과 힘과 목숨과 뜻을 다 하지 아니 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건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권의지를 따라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일에 다해야 온전함을 이룬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면 마음이 나뉘고 오늘 할 일을 다 하지 못한다. 2) 오늘 우리는 보물을 하늘에 저축해야 심령이 밝아지고, 3) 심령이 밝아져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4) 하나님을 왕으로 모셔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건설하고, 5)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루는 일에 전력하는 의식주 생활은 한 날 괴로움에 족하다.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것을 하나님은 다 아시고 더하여 주신다. 이것이 오 단계 신앙이다. 지상에서 오 단계 신앙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룬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새 창조할 때 새 창조되어 나온다. 이것이 부활한 자의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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