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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3장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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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11-12 08:25 조회3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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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3장 강해

제목: 믿음으로 얻는 구원 도리
요절: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28절)
1장과 2장에서 1:1-10은 인사말과 집필 동기를, 1:11-2:21은 본론의 전반부에 속한 복음의 정당성을 말씀한다. 3장과 4장은 복음과 율법의 구원 도리를 말씀한다. 3:1-9은 믿음을 버린 갈라디아교회를 책망하고 믿음으로 얻는 구원 도리를 말씀한다. 3:10-4:11은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4:12-20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애정과 고민을 말씀한다.
3장에서 1-5절은 믿음을 저버린 갈라디아교회를 책망하고, 6-9절은 믿음으로 얻는 칭의를 말씀하고, 10-14절은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 얻는 믿음을 말씀하고, 15-22절은 믿음을 위한 율법의 목적을 말씀하고, 23-29절은 몽학선생으로서 율법의 기능을 말씀한다. 율법과 복음의 어떤 점이 다릅니까? 1) 모세로 주어진 율법(요 1:17)인데 예수님이 주신 복음(요 1:17)이다. 2) 율법은 옛 언약이고(히 8:7, 13), 복음은 새 언약이다(히 8:7, 13). 3) 죄를 깨달아 알게 하는 율법이고(롬 3:20), 의롭게 하는 복음이다(롬 1:16, 17). 4) 율법은 속박하고(갈 4:22, 24), 복음은 자유하게 한다(갈 4:23). 5) 율법은 기록된 말씀으로 전달되지만(고후 3:6), 복음은 영으로 전달된다(고후 3:6). 6) 율법은 복음으로 인도하지만(갈 3:24), 복음은 모든 율법의 완성이다(마 5:17). 7) 율법은 행위를 요구하지만(갈 3:12), 복음은 믿음을 요구한다(갈 3:8). 8) 율법은 돌에 새겼지만(고후 3:3), 복음은 심비에 새긴다(고후 3:3). 9) 율법은 그림자이지만(히 10:1), 복음은 실상이다(히 10:1). 10) 율법은 한계가 있지만(히 8:7), 복음은 영원하다(히 13:20).


믿음을 저버린 갈라디아인 3:1-5
1-2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자신의 사도성에 대한 신적 기원을 증거하고 나서, 이제 바울이 구원의 복음을 받아 믿는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믿음으로 얻은 구원(롬 3:24)의 복음을 버리고 율법주의 사상에 미혹을 받은 사실에 대하여 지혜롭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 복음을 받아서 깨달아 알고 믿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은 눈앞에 보는 것처럼 확실하게 깨달아 알고 믿었던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연합한 옛 사람 자기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이고, 그의 부활하심에 연합한 새 사람 자기는 그리스도와 함께 산 자이다(롬 6:5, 11).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는 옛 사람 자기가 행동하는 것이고, 이미 얻은 구원을 믿는 자는 새 사람 자기가 행동하는 것이다. 옛 사람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사는 자이고, 새 사람은 성령과 피와 진리로 사는 자이다(엡 4:22-24).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리로 깨달아 확실히 믿은 갈라디아 사람들이 율법주의 사상으로 변질된 것을 바울이 보고 탄식하면서 누가 너희를 꾀더냐라고 책망했다.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아니면 듣고 믿음으로냐 이렇게 바울은 물으면서 그들이 바로 알고 믿기를 소원한 것이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 복음을 듣기 전에 죄로 인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방인들이다. 율법은 이방인을 죄인으로 정죄하고 이방인에게 구원 얻는 길을 확실히 말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 복음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차별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이방인이라도 유대인들과 똑같이 구원 얻게 되는 것을 말씀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갈라디아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버리고 율법주의 사상에 미혹을 받아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잘못된 사상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믿는 자는 성령으로 구원 얻게 되는 것을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확실히 알고 믿게 한 것이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서 믿는 사람들이 옛 사람 자기에게 미혹을 받으면 육체대로 행하면 썩어진 것만 거두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 믿는 그리스도인은 먼저 옛 사람 자기와 새 사람 자기를 구별하고, 새 사람 자기가 되어서 믿음으로 행동해야 한다. 새 사람 자기로 행동하는 것은 성령과 피와 진리로 행동하는 것이다. 새 사람 자기로 사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사는 것이다.

3-5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바울은 갈라디아교회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을 지혜롭지 못하고 어리석다고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으로 시작했으면 성령으로 인내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런데 성령으로 인내하지 못하고 육체로 마치는 것은 썩어지는 것만 추수하기 때문에 그 행위는 어리석은 행위이다. 그 원인은 율법주의자들의 미혹을 받아 율법의 행위로 구원 얻는 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버렸기 때문이다. 오늘은 옛 사람 자기에게 미혹을 받으면 자기 육체 좋은 대로 행하게 된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다. 우리는 옛 사람 자기와 새 사람 자기를 구별하고, 새 사람 자기가 되어 믿음으로 행동해야 한다. 새 사람 자기의 행위는 성령을 따라 진리대로 대속을 벗지 않고 입고 사는 것이다. 이 믿음의 행위를 인내해야 한다. 그러면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갈라디아교회가 많은 괴로움을 받은 것이 참으로 헛된가? 그 많은 괴로움은 무엇인가(빌 4:14; 골 1:24)?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갈라디아교회가 율법주의자들로부터 받은 고난으로 추측된다. 갈라디아교회가 많은 압박과 고통을 받을 때에 올바른 교리와 신조를 가지지 못하므로 미혹을 받아 육체로 돌아간 것이다. 오늘 우리는 성경대로의 올바른 교리와 신조를 가지고 성령을 따라 진리대로 주 안에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을 구원에 이르기까지 인내하고 충성해야 한다. 사활로 대속하신 주님이 성령을 보내 주시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며 우리를 성전 삼으시고, 성령은 우리 안에서 중생된 영과 함께 영감과 진리의 능력으로 역사하고 우리가 그것을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그런데 성도가 복음을 버리고 육체대로 율법을 행하는 것은 불의하므로 썩어진 것을 거두게 된다. 오직 복음을 듣고 영감과 진리대로 믿고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역사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영생한다. 율법의 행위로 구원에 이르는 자는 하나도 없고, 오직 복음대로 믿어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구원에 이르게 된다(엡 1:19). 율법은 우리의 죄를 깨달아 알게 하지만, 복음은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된다(롬 1:16, 17; 3:20).

믿음으로 얻는 구원과 복 3:6-9
6-9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바울은 창 15:6과 롬 4:3, 9을 인용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하는 말씀에서 믿음으로 구원 얻는 도리에 대한 역사성과 성경대로의 정당성을 말씀한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행위 곧 할례를 받으므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자랑하지만 할례를 받기 전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 중요하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는 유대인들만 아니라 하나님과 복음을 받아 믿는 모든 자들에게 믿음의 조상이 이미 되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는 모든 성도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이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아브라함의 아들은 혈통적으로 아들된 것을 말하지 않고 신앙으로 후손된 것을 말씀한다. 이방인이라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믿는 자는 다 아브라함의 신앙 자손이다.
하나님은 먼저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하시고, 이방인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신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성경의 영감성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여 믿게 하시고, 이방인도 복음을 받아 믿음으로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게 하셨다(창 12:3; 18:18; 22:18). 이것은 하나님의 전지성과 전능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 복음을 받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아브라함과 함께 구원을 얻고 복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으로 약속하시고, 그 복음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는 계약하신 대로 구원에 이르는 복을 누구든지 받는다.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으로 주신 복음을 믿고 순종하는 자는 누구든지 얻는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믿는 자가 되는가? 그것은 하나님 택함과 예정과 창조와 대속을 받은 자가 예정하신 때를 따라서 중생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는 자가 믿는 자이다. 본인이 믿고 싶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엡 2:8).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믿는 것은 전적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은혜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복은 어떤 복인가? 첫째는 죄와 마귀와 사망에서 해방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는 복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의롭다 하여 심판이 면제되는 복이다. 셋째는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가 되고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 되는 화목의 새 생명을 가지는 복이다. 넷째는 영의 중생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소망과 믿음을 가지는 복이다. 다섯째는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대로 영생하는 복이다. 여섯째는 성령의 감동하시는 영감대로 영생하는 복이다. 일곱째는 그리스도와 함께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분을 영원히 감당하는 복이다. 이 일곱 가지가 복이 되는 것은 금생과 내세 영과 육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복으로 영광스러운 지위를 영원히 얻기 때문이다.

율법의 행위와 저주 3:10-14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 믿는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행하는 자는 복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게 된다. 그것은 율법 행위는 자기의 주관이 행동하는 능동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이 자기를 정죄하기 때문이다. 타락한 인간은 아무도 하나님의 온전한 율법을 온전히 행하지 못한다. 성도가 율법 행위를 강조하고 복음의 진리를 무시하므로 믿음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가 되는 것을 이 말씀이 경고해주고 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있을 수 없다. 중생해서 믿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기본적인 은혜를 받아서 자기의 세상 현실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믿음의 행위를 할 때에 구원과 복을 받는다. 자기의 세상 현실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이 어떻게 행할 것을 영감과 진리로 말씀하여 주신다. 그 영감과 진리를 성도는 깨달아 믿고 순종해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만 하면,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책임져주시므로 하나님의 구원과 복을 받지 못하는 자가 없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있는 자이다.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율법주의자로서 율법을 행해야 구원에 이른다고 믿는다. 신 27:26에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고 하는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이 선포해주신 말씀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선포해 주신 그 목적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지는 못하는 사람은 온전히 행하지 못하여 저주 아래에 있게 됨을 알게 하고, 그 뜻을 깨달아 알고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도록 말씀해주신 것이다. 타락한 인간은 아무도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을 온전히 행할 수 없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는 온전한 행위가 절대 불가능하다. 신약시대 믿는 우리들이 믿기만 하고 행함이 없어도 구원과 복을 받는가? 그렇지 않다.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그 믿음이 온전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은 율법의 완성이다. 이 복음을 믿는 자가 성령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여 주시는 영감과 진리대로 믿고 순종해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 안에 역사하여 그의 신앙행위를 온전하게 하여 주신다. 이러한 신앙행위는 온전하다. 저는 하나님의 구원과 복을 받는다.
11-14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지켜서 아무도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을 결론적으로 말씀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날 때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완전한 율법을 완전히 지켜서 율법의 요구에 만족을 이룰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롬 7:12-25).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율법은 아무도 율법을 온전히 지켜 행하지 못하므로 자기의 죄를 깨달아 알게 하는 몽학선생에 불과하다(갈 3:24).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의 목적과 본질을 깨달아 알지 못하고 율법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의 목적과 본질을 깨달아 알고 인간이 구원에 이르는 방법을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을 말씀한다(합 2:4; 롬 1:17).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뿐이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준다.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다. 율법은 완전한 복종과 의무를 요구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사랑과 믿음을 요구하는 복음과 구별이 된다. 율법의 강령은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눅 10:28) 말씀한다(레 18:5). 신인양성일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활로 대속을 완성하시므로 율법을 온전히 이룬 복음을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온전함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고 영생한다(요일 2:27).
율법을 온전히 지켜 행하지 못하는 인간은 율법의 저주 아래에 있게 된다. 그래서 사람으로는 아무도 저주와 사망에서 벗어날 자는 없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질고와 저주를 대신 담당하시고 율법의 저주와 사망에서 해방시키시고 우리를 자유하게 해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으로 영생하는 생명 길을 주신 이것이 복음이다. 우리가 이 복음을 받아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역사해서 율법의 온전함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는 구원에 이르게 된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이다(신 21:23).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와 명령을 온전히 이루심으로 무덤에서 살아나시고 하나님 영광의 보좌에 앉으셨다. 이 복음으로 인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게 되었다. 또 이 복음은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의 약속을 해 주셨다. 이로 인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사활대속과 승천과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해지게 되었다(행 1:8). 이방 지역인 갈라디아에도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바울의 교훈은 갈라디아교회에 율법주의 교훈에서 멀어지게 하는 복음 운동이다. 따라서 신약교회는 성령과 진리를 따라 믿음으로 순종해서 주님의 교회가 세워진다. 율법대로의 행위는 율법대로 저주와 사망에 이르는 것뿐이므로 이것이 율법의 한계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모세의 율법 이전에 계약된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로 성취되었기 때문에 율법은 언약을 폐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갈라디아교회에 신앙생활의 표준은 변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복음에 배치되므로 율법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거부되고 있다.


믿음을 위한 율법의 목적 3:15-22
15-16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1절에서는 어리석은 갈라디아 성도들이라고 하다가 이제는 형제들이라고 사랑하는 자로 말씀한다. 사람이라도 서로 약속한 것을 지키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절대로 폐할 수도 더할 수도 없다. 이 약속들은 불변의 하나님이 인간과 맺은 언약이므로 불변의 성격을 가지면서 그대로 성취되는 성격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약속한 언약인데 그의 자손들이라 하지 않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서 네 자손이라 한 것은 그리스도를 두고 말씀하셨고 또 실상으로 오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믿음의 자손들에게 약속하셨는데, 이 약속의 구원은 그리스도를 모든 믿는 성도들에게 언약이 성취되는 것을 말씀한다.
17-18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그리스도의 복음보다 모세의 율법이 역사적으로 오래되어 왔기 때문에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바울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율법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복음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약속된 언약이라는 것을 말씀한다.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언약으로부터 모세의 율법까지의 기간은 430년보다 더 걸렸다. 그러나 430년을 두고 말씀하는 것은 출 12:40의 이스라엘의 애굽 체류 기간을 두고 말씀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기간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기업에 대한 예언으로서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횃불 언약(창 15:9-21)이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내려간 때(주전 1876년)를 기준으로 출애굽해서 율법을 받기까지(주전 1446년)를 보는 것이 옳다. 그 언약이 체결된 때보다 실제로 이루어진 때부터 시내산 율법을 받은 때까지를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언약의 내용을 담은 복음이 율법보다 먼저 주어진 언약인 것을 밝히 말씀한다.
19-20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그른즉 율법이 무엇이냐? 그 의미는 율법을 주신 이유를 묻는 말씀이다. 그것은 앞에서 복음을 언약으로 말씀하고, 언약이 율법보다 먼저 있었기 때문에 율법보다 언약이 우선이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율법을 왜 주셨는가? 율법은 무익한가? 이런 난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율법을 주신 목적과 전달 방법과 율법의 사명을 말씀하고 있다.
또 율법을 주신 이유는 범법함을 인하여 언약에 율법을 더한 것으로 말씀한다. 사람은 언약으로 하나님의 유업을 이미 받았다. 그 이후에도 사람은 계속하여 범죄하기 때문에 타락한 사람의 죄를 깨달아 알도록 하기 위하여 율법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그 목적은 사람이 범한 죄를 깨달아 알고 회개하도록 하려 함이다(롬 3:20).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영원하고 완전한 사죄를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사함 받은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믿음으로 의에 나아가고,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다.
율법은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풀어 주셨다. 율법이 사람에게 전해지는 경로에 대하여 하나님이 천사들로 통하여 중보의 손을 빌려 전해주셨다고 말씀한다. 중보의 손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그리스도라는 견해도 있으나, 문맥의 흐름을 보아 하나님께서 모세를 중보로 삼아 주신 것이 확실하다.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을 받을 때에 천사들을 통해서 받았다는 것이다(신 33:2; 행 7:38; 히 2:2).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며 천사를 통하여 받은 율법의 가치는 결코 작게 평가될 수 없다. 모세를 중보로 받은 율법은 그리스도로 주신 복음과 가치 차이도 있지만 한계도 있다. 율법은 약속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몽학선생 노릇을 했지만 그 이후에는 율법이 완성되므로 그 기능이 소멸된 것은 아니다. 복음을 받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율법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율법은 성도가 지은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율법의 온전함이 이루어지게 한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 또한 복음을 주셨다. 율법으로 복음이 우리에게 왔고, 복음으로 율법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지게 된다. 복음을 따라 믿는 성도라도 믿음에서 떠나 죄를 범하면 율법 아래에 있게 되고, 그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언약을 따라 구원과 복을 받게 된다. 이렇게 역사하시는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보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복음은 언약의 우월한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이면서 복음이다.
21-22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율법보다 약속을 먼저 주셨지만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을 결코 거역할 수 없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율법은 약속을 완전하게 하는 법으로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한 분 하나님이 인간에게 수여한 약속과 율법은 그 목적과 기능이 다르나 율법은 약속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한다. 율법은 인간의 무능과 죄성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반드시 필요한 것을 깨달아 알게 한다. 처음부터 인간이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면 그리스도의 구속이 필요 없다. 그래서 율법이 선포되기 전에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속하실 것을 하나님이 약속해 주셨다. 그 후에 하나님이 모세의 율법을 말씀한다. 모세의 율법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다고 말씀하는 것은 인간이 죄성 곧 악성과 악습으로 죄에서 벗어날 자가 아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자도 없기 때문이다(시 143:2; 롬 3:19, 20).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약속을 미리하시고, 그 약속대로 그리스도께서 오시므로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 3:23-29
23-24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은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 율법으로 무거운 죄 아래에 살게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활로 대속을 완성하시므로 믿음을 선물로 주시기까지, 인간은 죄와 마귀와 사망 아래에 종이 되어 살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율법을 폐하러 오시지 않고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고 오시고 그 율법을 완전하게 하셨다(마 5:17; 요 19:30). 그렇다고 해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에게 율법이 필요 없게 된 것은 아니다. 믿는 자이면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역사해서 하나님의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시므로 의인이 의인 생활을 영원히 할 수 있다(롬 1:17; 히 10:38).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을 바울은 명백하게 지적하고 있다. 율법 보다 언약이 먼저 선포되었으나, 율법은 인간이 자기의 죄를 깨달아 알고 회개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도하여 믿음으로 살게 하는 율법의 기능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율법을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돌보아 주는 몽학선생에 비유하여, 율법이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의지하여 찾아 모시도록 하는 선생님으로 성경은 말씀한다. 몽학선생은 고대 헬라사회에서 6세에서 16세까지 귀족의 자녀들에게 초등학문을 가르쳐 주는 가정교사이며, 그들의 행동을 돌보아 주는 노예이다. 율법은 구원에 이르도록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과 같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대형으로 사죄 받은 자기의 죄를 율법으로 깨달아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 율법으로 자기의 신앙양심을 가지지 못하면 성령의 감동하시는 영감을 받지 못하므로 율법주의자가 될 수 있고, 또 반대로 율법을 무시하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된다고 하면 불건전한 신비주의자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신앙양심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성령의 감동하시는 영감과 진리대로 믿고 순종할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사활대속 복음을 힘입어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고 영생하는 구원을 얻게 된다.

25-29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 이후로는 우리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이 성년이 된 이후에 가정교사의 지도가 필요 없게 되는 것과 똑같다. 그것은 율법이 정하는 죄에 대하여 완전한 사죄를 받았고, 율법의 요구와 명령에 대하여도 그리스도의 대행으로 완전한 칭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리스도인이라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떠나면 당장 율법 아래에 거하게 된다. 그의 행위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게 된다(계2:11). 우리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되었다(요 1:12; 롬 8:16).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는 될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연합하여 옛 사람이 죽고, 그의 부활하심에 연합하여 새 사람이 사는 자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자이다(롬 6:4-6). 그는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자는 자이다(갈 2:16, 20).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것은 겉으로는 사람의 행위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을 벗지 않고 입고 사는 행위를 하므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롬 13:14; 엡 4:22-24; 골 3:10). 옛 사람이 되어 행동하면 율법 아래에서 사는 자가 되고, 옛 사람을 부인하고 새 사람이 되어 행동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살게 된다.
율법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주인과 종의 구별이 뚜렷하다. 이것은 많은 나라와 민족들의 관습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도 세상에는 종족과 계층, 성별간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주인이나 종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다. 이것은 놀랄만한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 나라에 백성이 되는 조건이 똑같다. 이것이 복음의 동일성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로 연합이 되면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의 종이다. 그리스도인은 아브라함의 신앙 자손이므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유업을 아브라함과 함께 유업을 이을 자이다(고전 3:22, 23; 엡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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