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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장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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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7-31 06:38 조회6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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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장 강해

제목: 바울의 인사말과 집필 동기
요절: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갈 1:8)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믿음으로 얻는 구원 도리를 말씀하여 준다. 로마서, 고린도 전후서, 갈라디아서 등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도리를 말씀하여 주는 것이 특별하다. 바울이 1차 전도 여행에서 세운 안디옥교회, 이고니온교회, 루스더라교회, 더배교회가 갈라디아 교회들이다. 이 교회에 율법을 지켜 행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전하는 율법주의에 대항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 도리를 전하고 있는 것이 갈라디아서이다. 갈라디아서는 1:1-10은 인사말과 집필 동기를 말씀하고, 1:11-2:21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정당성을 증거하려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사도직과 교회의 인정을 말씀하고 믿음으로 얻는 구원 도리를 간단하게 말씀한다. 3장과 4장은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상세하게 말씀하면서 복음의 절대 우월성을 말씀한다. 5:1-6:10은 복음을 받아 믿는 성도가 믿음으로 살 때 자유하며, 성령으로 행할 때 성도의 교제에서 영생을 얻게 된다. 그리고 6:11-18에서 말씀을 마친다.
1장에서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당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려고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사도임을 증거한다. 1-5절은 교회에 대한 인사말씀을 하고, 6-10절은 집필 동기를 말씀한다. 잘못된 신앙을 고치고,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진리를 가지므로 다른 복음에 미혹을 받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할 것을 말씀한다(벧전 5:8). 11-24절은 본론의 전반부이다. 갈라디아 거짓 교사들이 문제시 하는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바울의 자기 변호이다(11, 12절).

인사말 1:1-5
바울은(1절) 갈라디아 교회들에게(2절) 복음을 말씀한다(3-5절). 이 복음은 사람으로 말미암지 않고 사활로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사도가 된 바울이 대속의 복음을 훼방하는 율법주의의 잘못을 전함으로 사도권을 확립하고 있다. 이어서 축도에서도 칭찬은 없고(롬 1:8; 고전 1:4-7; 살전 6-8), 그리스도로 구원 얻는 도리와 사도권의 신적기원을 말씀하므로 율법주의를 배격하는 본서의 주제를 명백하게 하고 있다.
1-3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자신이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자신이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됨을 말씀한다. 사도의 신적권위를 밝힘으로써 성도들에게 사도의 정당성을 불식시키는 효과를 누린다. 바울의 사도됨은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고,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이라는 것을 말씀한다. 그 원인과 과정이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같이 사도의 정통성을 명백하게 한다(고후 1:1; 골 1:1).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을 믿지 못하는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사도된 바울이 증거하는 것은 율법주의를 회개하고 신앙주의로 신앙을 새롭게 하려고 한다.
바울은 복음 사역을 할 때 곁에서 돕는 사람들과 함께 문안 인사를 했다(고전 1:1; 고후 1:1; 빌 1:1; 골 1:1).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라기보다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지적하려고 하기 때문에 익명으로 “모든 사람”이라고 말씀한다. 모든 사람은 바울과 함께 갈라디아 지방에 복음을 전하는 선지자들이나 교사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교회에 분쟁이나 이단 사상으로 어려움이 있는 교회에 바울 혼자의 주장이 아니고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 편지는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보낸 회람서신이다. 바울이 쓴 편지는 대부분 회람서신이었다(골 4:16).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바울이 북쪽 갈라디아 지방에는 간적이 없고, 남쪽 갈라디아 지방 곧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으로 여겨진다. 이 지방은 바울이 1차, 2차, 3차에 걸쳐서 전도 여행했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러한 문안 인사는 바울에게 일반적이다(고전 1:3; 엡 1:2; 빌 1:2). 바울이 갈라디아교회들에게 소원하는 은혜와 평강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과 대속과 중생으로 믿는 사람들은 하나의 교회를 이루기 때문에 우리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과 사람과 복음으로 하나가 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안 되면 은혜와 평강은 역사될 수 없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사활로 대속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사죄와 칭의와 화친과 영생의 은혜이다. 이 은혜를 깨달아 알고 믿음으로 이 은혜 속에 거할 때 생명과 평안이 역사한다. 그 안에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역사하기 때문이다.
4-5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수신자들에게 위로와 감사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씀하므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다. 그리스도는 창세전 자존하신 하나님의 이름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입고 오신 독생자 그리스도 예수님이 보내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므로 이 죄악의 세상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죄와 마귀와 사망에서 자유하게 하신 복음을 말씀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게 영원한 영광을 찬송한다. “아멘”은 구약시대에는 서약이나 선언에서 확인할 때 사용되었으며(민 5:22; 신 27:15-26),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의 말씀에 진실함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으며(마 6:2, 5; 요 1:51), 오늘에는 말씀과 기도의 응답에 대한 표현으로 아멘 한다(대상 16:36).

집필 동기 1:6-10
6-7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이다. 이는 전적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신인양성일위로 보내시고, 사활로 대속하여 거듭나게 하시므로(벧전 1:3, 21)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소망과 믿음으로 살게 하신 이 은혜는 지극히 크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 은혜는 사죄와 칭의와 화친과 영생이다. 이 은혜를 깨달아 진리대로 믿고 영감대로 믿어서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생한다. 이 지극히 큰 은혜로 부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아 알고 감사해야 하고 믿음으로 이 은혜 아래에 거해야 한다. 그런데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이 거짓 교사들의 미혹을 받아서 이 은혜에서 속히 떠나 다름 복음을 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말씀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으로 거듭나게 하시므로 부르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알고 그 은혜 아래에 거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순종하지 못한 죄를 대형해서 사죄의 은혜를 주시고, 율법의 요구와 명령에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희생하심으로 대행하셔서 칭의의 은혜를 주신 사랑을 알고, 그 은혜 아래에 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이다. 다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시고 부활하신 대속의 복음을 무시하고,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율법주의 신앙 사상이다.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이 거짓 교사들의 미혹을 받아서 회개하고 믿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신속하게 배반하고 도로 다른 복음을 좇아가는 것이 너무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바울은 인사말에 이어 갈라디아교회에 칭찬이나 감사로 위로하지 않고(롬 1:8-15; 고전 1:4-6), 갈라디아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 복음을 버리고 율법주의 신앙으로 신속하게 변질되어 가는 것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복음은 없다고 말씀하는 것은 참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뿐이라는 것이다. 이 복음의 영원함과 유일함을 말씀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는 것은 완전히 소멸되게 하려는 악령의 역사이다. 그래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를 견책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도리에 대한 정당성을 말씀한다.
8-10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우리”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인데, 디모데나 실라를 두고 말씀한다.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천사가 율법을 준 것처럼 거짓 교사들이 말했거나, 하나님이 보낸 천사라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거나 훼방하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두 번이나 말씀하는 것은 변함이 없는 진리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은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받아서 살거나 전하는 것은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므로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 있게 된다. 하나님의 복은 복음으로 오는데 복음을 버리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지 못하므로 저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떻게 자기가 노력해도 하나님이 멸망으로 파괴하실 것이다.
오늘 우리의 세상 현실은 사람을 좋게 하랴 아니면 하나님을 좋게 하랴 이것을 요구하는 현실이다. 사람에게 기쁨을 구하랴 아니면 하나님에게 기쁨을 구하랴 이것을 요구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사람을 좋게 하고 사람에게 기쁨을 구하면 인본주의 신앙 되고, 하나님을 좋게 하고 하나님에게 기쁨을 구하면 신본주의 신앙 된다. 사람의 종이 되고 그리스도의 종이 되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거듭나서 믿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리스도의 종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활대속 복음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에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기쁘신 뜻을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면 율법의 완성을 이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 아래에 거하게 된다. 여기에 생명과 평강이 역사한다.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신적 기원 1:11-24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정당성을 본론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율법주의자들이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도를 전하는 사도 바울의 신적 기원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11-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형제들아” 말씀하는 것은 하나님의 택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믿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아들들이다.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로서 바울과 함께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전하는 동역자는 다 형제들이다(고후 1:1). 바울이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람의 뜻으로 전하여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려고 말씀한다. 바울은 10절에서 사람들에게 관심이나 기쁨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종이 아니라고 했다. 사람의 뜻을 따라 사람의 생각과 판단으로 전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한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씀한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사람으로 말미암았고, 사람에게 배웠고, 사람에게 받아서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었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육을 받았고, 율법으로는 흠이 없이 살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한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복음을 직접 받았고,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도 직접 받았다고 말씀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 보여서 알게 하고 믿게 하고 전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 계시의 내용은 사활의 대속 복음이다. 계시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 사람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서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성전 삼으시고 우리 안에서 영감과 진리로 역사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하신다.
13-14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중요성을 말씀하기 위하여 예수님 만나기 이전의 잘못된 체험을 말씀한다(행 22:3-10; 26:5-12; 빌 3:4-6).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고 잔해한 것은 유대교의 율법주의자들 보다 더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유대교는 모세의 율법을 기준으로 하고, 선조들의 유전을 중요시하여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종교이다. 바울도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기 전에 강한 율법주의자였다. 유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했는데 하나님과 교회를 핍박하는 자가 되었다. 유대교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탈선한 노선이다. 바울은 동족 중에 여러 연갑자보다 더욱 열심을 가졌고,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음으로 신앙과 규범에 열심 당원이었다(마 10:4; 눅 6:15; 행 21:20). 랍비들은 613개 율법과 유전으로 신앙을 판단한다. 바울은 이러한 가운데서 율법과 유전에 충실했다(행 22:4; 26:11; 빌 3:6).
15-17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유대교에 깊이 빠졌던 바울이 그것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지 않았다. 바울의 변화는 하나님의 섭리로서 “내” 바울에서 “하나님”으로 문장의 주어가 바꾸어졌다. 바울은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기 전에 하나님이 선택하셨다. 하나님의 택하신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예정하신 때를 따라 은혜로 하나님이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불러 복음의 사역자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바울은 유대교의 철저한 율법주의자로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에 전하는 것은 절대로 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자로 알고 있었고, 잘못된 사상을 전하는 자로 알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 대하여 핍박하는 일이 자기의 사명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을 택하시고 부르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다메섹 도상에서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부르시며 그를 구주로 영접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바울은 혈육과 의논하지 않고 즉시 순종했다. 가족과 의논할 필요가 없는 것은 구주 예수님의 부름을 직접 받았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먼저 가지 않았다. 회개한 바울이 사람에게 복음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울이 복음에 대하여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사도들을 만나서 배우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직접 받았기 때문에 일부러 사도들을 찾아 만나지 않았다. 바울은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메섹으로 돌아왔다고 말씀한다. 아라비아는 페르시아만과 홍해 사이에 있는 넓은 사막이다. 어떤 분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고(출 19:14, 25), 엘리야가 이세벨의 칼을 피하여 찾은(왕상 19:8) 시내산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또 어떤 분은 다메섹에서 가까운 곳으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기 때문에 명백하게 알 수 없으나 대부분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가지면서 회개와 경건 훈련으로 복음 사역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18-20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오 일을 유할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
“그 후 삼 년 만에”하는 말씀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고 3년이 지나서 바울이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고 며칠을 있었고(행 9:19), 아라비아에서 얼마 동안 있었고, 다메섹으로 돌아와서 여러 날을 있었다(행 9:23). 이 모든 기간을 3년으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을 만나고 즉시 사도들을 만나지 않고 3년이나 지나서 복음을 전하러 나가기 전에 먼저 사도들을 만나러 간 것이다. 이것은 바울의 복음 사역이 사도들로부터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베드로를 만나기 전에 이미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바울은 15일 동안에 베드로와 주의 형제 야고보를 만나고 다른 사도들은 만나지 못했다. 이것은 사도들을 만나는 기간이 아주 짧은 기간이었다는 것이다. 베드로를 심방한 것은 바울이 베드로와 교제하면서 보름이 짧은 기간이지만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하여 다소 지식을 받은 것으로 짐작이 된다. 다른 사도들을 만나지 못한 것은 바울이 핍박하는 것을 피난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그 이유는 사도들이 성령 강림 이후 담대함을 얻었기 때문이다(행 4:23-31; 5:40-42). 스데반이 순교한 직후에도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다(행 8:1). 사도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예루살렘에서 떠났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행 11장). 주의 형제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이다. 처음에는 그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요 7:5). 오히려 미친 사람으로 보았다(막 3:21).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는 믿었다(고전 15:7). 오순절 성령 강림 때 다른 동생들과 함께 성령 강림을 체험했다(행 1:14). 그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열심히 전하고 예루살렘 총회에서 의장이 되기도 했다(행 15:13). 주후 62년경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산헤드린공회로부터 정죄를 받고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순교했다. 갈라디아 교회에 사도직에 대한 정당성을 밝힌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베드로와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만나지 못했고, 겨우 15일 동안 머물었던 사실을 밝히므로 사도직의 기원을 재확인했다. 바울이 교회에 쓴 이 편지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고 진실이라는 것이다.
21-24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
예루살렘에 머물렀던 바울은 그곳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음모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안 성도들이 바울을 가이사랴로 가게 했고, 다시 다소로 가게 됐다(행 9:26-30). 이러한 이동은 바울의 피신이 아니고 복음을 이방에 널리 전파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행 22:17-21). 가이사랴는 수리아의 행정구역이었고, 다소는 길리기아 지방에 가장 큰 도시로서 바울의 고향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오래 머물렀다. 유대는 사마리아에서 이남 지역이지만 통상적으로 예루살렘을 제외한 팔레스틴 지역을 말한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로부터 율법을 배웠고(행 22:3), 거기서 기독자를 핍박했으며(행 7:58; 9:1, 2), 주님을 만난 이후에 보름 동안 머물렀고(18절), 그의 생질도 이곳에 살고 있었다(행 23:16). 그래서 예루살렘에는 바울의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유대에 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은 사도들로 하여금 세워졌기 때문에 유대인의 회당과는 다르다. 사도들과 성도들이 예루살렘과 유대에 많은 교회를 세웠다고 생각이 된다. 바울은 예루살렘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서만 활동했기 때문에 유대 사람들은 소문은 들어도 얼굴은 알지 못했다. 유대에 있는 성도들은 바울을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회개한 바울에 대한 소문만 들었던 것이다. 그 소식은 과거에 핍박하던 사람이 지금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새롭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거에 우리를 핍박하던 사람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에 유대에 있는 성도들이 너무 기뻐했다. 예수님을 핍박하던 자가 구주로 영접한 것은 기적이었다. 예루살렘과 유대에 있는 기독자들이 한 동안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행 9:26). 그러나 바울의 회심에 대한 진정함과 시간이 흘러서 그리스도인들은 사실을 알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찬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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