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3장 1-22절 강해 > 성경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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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3장 1-22절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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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4-29 07:19 조회4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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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 교회 3:1-6
두아디라에서 남쪽으로 약 48㎞ 떨어져 있는 사데는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도시였고, 무역이 발달하고 양털 가공업과 염색 공업이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부를 모은 도시였다. 따라서 사람들은 사치와 향락을 일삼게 되었다. 사데 교회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무능한 교회가 되었다(딤후 3:5). 주님은 사데 교회를 사랑해서 책망해 주셨다. 사데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책망은 받아도 칭찬을 받지 못한 교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인인이 있어서 주님이 책임지고 구원하여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죽은 교회이면, 사데 교회는 무능한 교회이다. 그러면 주님이 사데 교회에 어떠한 주님으로 나타나셨는가?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주님’으로 나타나셨다. 우리는 주님의 것이며 주님의 종들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주님의 종들을 장중에 잡으시고 성령으로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에 능한 일을 할 수 있다. 우리가 바로 깨달으면 주의 일을 할 때에 주의 일에 방해한 것을 찾아서 회개하므로 주님에게 붙들려 쓰이면 무능해도 능력이 있어서 어리석어도 지혜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하면 자기는 존귀해진다. 영광은 주님에게 돌리고 잘못은 자기에게 돌리는 것이 슬기로운 일이다. 아무리 무능한 사데 교회라도 영광스럽고 존귀한 승리를 하는 데는 주님과 성령이 교회의 사자를 잡으시고 일하면 승리하게 된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인데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으로 구별된다. 기본구원은 택함을 입은 자들이 이미 똑같이 받은 구원이다. 그러나 기본구원을 믿음으로 건설되는 성화구원은 우리의 자유의지와 신앙행위로 건설된다. 기본구원은 똑같이 받았으나 건설구원은 각각 차이가 심히 크다. 그 차이는 거의 무한이라 할 수 있다.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아들들의 영광과 권세와 존귀와 실력이 무한한 차이가 있고, 만물들에게 환영과 필요의 가치 차이도 무한하다. 이것은 오늘 세상 현실에서 신앙행위로 결정되기 때문에 건설구원을 행위구원이라 하고, 심신의 기능이 영광스러워지기 때문에 기능구원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신앙행위를 아시고 경고해 주신다. 주님이 사데 교회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 영이나 마음이나 몸을 말하지 않고 그 행위를 두고 말씀한다. 영과 마음과 몸과 행위는 하나님의 공심판을 통과시키는 대속을 주님이 단번에 입혀주시고 입혀준 대속을 벗기지 않는다. 그 이유는 대속을 그리스도인은 영원히 완전히 입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입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을 믿느냐? 이것을 우리가 안 믿느냐? 그 능력과 권세를 쓰느냐? 그것을 안 쓰느냐? 이러한 신앙행위를 대속하신 주님이 심판하겠다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다 서서 각각 선악 간에 행함을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고후 5: 10). 우리의 영육 심판이 아니고 우리의 신앙행위 심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과 육으로 행동하는 신앙행위는 현실에서 생명과 사망으로 나누어진다. 우리의 영과 육이 하늘나라에 갈 때 영과 육의 영광과 실력은 차이가 무한하다. 성령으로 움직인 것은 다 영생하고, 육체로 움직인 것은 다 사망한다.
사데 교회의 신앙행위가 살았다는 이름은 영과 심신과 행위가 생명록에 기록이 되어 있어 하나님의 완전한 대속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죄를 구속하지 않고, 죄를 멸하러 오셨다. 주님이 사활대속으로 우리의 영과 육을 죄에서 구속하고, 죄와 마귀와 사망을 주님이 멸하셨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 믿음의 행위를 해야 한다. 예수님의 대속은 공심판 대속이지 사심판 대속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사심판은 우리의 신앙행위 심판이다. 우리는 각각 우리의 현실에서 우리 심신의 정력이 신앙행위로 우리의 기능이 만들어진다. 무슨 형체든지 그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 기능을 따라 그의 실력과 영광이 결정된다. 심신의 기능은 주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행하면 의의 기능이 마련되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행하면 죄의 기능이 마련된다. 죄의 기능은 제하여지고, 의의 기능은 하늘나라에 가고 영원한 자기의 실력과 영광이 된다. 의를 행하는 심신은 의의 병기가 되고, 죄를 범하는 심신은 죄의 병기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으로 우리의 행위가 생명록에 기록은 되어있으나 우리가 사활대속을 믿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생명록에서 그 기능이 흐려진다(계 3: 5). 육체대로 행동한 것은 흐려져서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다. 죽은 것은 썩어지고 없어진다. 믿음으로 행한 것만 생명록에 남아 있다. 생명록에 남은 심신의 기능을 가지고 우리의 영과 육이 부활하게 된다.

2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우리는 세상과 함께 잠자는 신앙행위를 일깨워야 한다. 우리의 심령을 일깨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신앙양심이 살아나게 하는 것이다. 신앙양심이 일깨면 주님을 찾아 만나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신앙행위로 심신의 기능이 이미 죽은 것도 있고 영생으로 산 것도 있다. 산 기능은 영생이고, 죽은 기능은 죄가 되므로 둘째 사망의 해를 받아서 영원한 멸망이다. 우리의 신앙행위는 온전해야 그 기능이 살고 영생한다. 남은 바 죽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살았으나 현실에서 실제로 살아나지 않으면 심신의 기능이 영멸한다. 우리가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이 되어 믿음으로 행하면 그 기능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성화되고 영생하는 기능이 된다. 현실에서 믿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되므로 심신의 기능은 영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은 바 죽게 된 것은 아직 죽지 않고 대속으로 살았기 때문에 실제로 살려야 영생하는 심신의 기능으로 살아나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에 영원히 살려야 영멸하지 않고 영생하게 되는 성화구원이다.
우리의 신앙행위가 영생하는 그 표준은 온전이다. 온전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다(히 12:2).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을 벗지 않고 입고 행동하는 자의 행위는 온전하다(계 3:4). 온전한 신앙행위는 옛 사람 자기가 부인되고, 새 사람 자기가 되어 주의 피와 성령과 진리대로 믿고 순종하면 사람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으로는 능히 완전하게 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믿으면, 믿는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해서 완전하게 하여 주신다. 우리의 구원은 기본구원 위에 성화구원이 건설되는 것이다. 주님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증거하여 주시는 것을 우리의 심신이 자유의지로 믿을 때 심신의 기능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성화되고 하나님의 교회가 건설되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다. 성화가 건설되는 하나님의 능력은 사활대속 능력과 성령의 능력과 진리의 능력이다. 우리의 생명이 되신 주님이 지극히 큰  능력으로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해서 우리의 구원을 완전하게 하여 주신다.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 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이것이 사데 교회가 온전하게 되는 방편이다. 이것을 주님이 사데 교회에 말씀한다. 주님이 일곱 영과 일곱 별을 장중에 잡으시고 말씀하고 역사해 주신 것은 은혜로 받은 것이다. 일곱 별은 주님이 주신 은사를 받아서 가지고 있다. 그 은사로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와 기쁨이 나오고 주님을 소망하므로 믿음이 소생하게 된다. 우리는 받은 은혜를 배은하지 않고 사은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대형의 사죄 받은 것을 생각하면 죄범하지 않고 무죄자로 사는 것이 사은하는 생활이다. 주님이 보내신 종으로 받은 은혜는 지극히 크다. 사도 요한은 받은 은혜를 생각하고 사은하는 생활을 하다가 밧모 섬에서 주의 날 성령에 감동하여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들은 것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요일 2:27; 계 3:6)이다. 각자 자기의 현실에서 지키고 회개할 수 있는 말씀을 신앙양심으로 듣게 되는 것은 이미 받은 것을 밤낮 생각하므로 심령이 깨끗하고 갈급하며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성령으로 말씀하여 주신다. 성도는 성령으로부터 들은 영감과 진리를 생각으로 깨달아 알고, 마음으로 인정하여 믿고, 몸으로 그것을 지켜 행해야 온전한 신앙행위가 된다. 지켜 행하지 못한 죄는 회개해야 된다. 이것이 일깨는 방법이다.
만일 죄를 범하고 지은 죄를 회개하여 새사람으로 일깨지 아니하면 도적당하는 것 같이 자기의 영원한 소유와 능력과 영광을 다 빼앗긴다. 주님이 도적으로 오지 않는다. 온전한 행위를 하지 아니하면 영도 마음도 몸도 구원을 얻으나 심신의 기능과 소유와 영광을 도적 당한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주님이 피로 값을 내고 산 주님의 것을 받아 가지고 있다. 지금 보관하고 있는 것이 주님의 것인데 우리가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사용하면 그것을 영원히 내 것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믿음으로 행하지 못하므로 기능과 소유와 영광을 도적 당한다. 우리의 현실은 단번 현실로 속히 지나가고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다. 또 언제 죽을지 언제 주님이 재림하여 오실 지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주님이 예정하신 대로 되고 있다.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사데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을 벗지 않고 입고 산 사람이 몇 명이 있었다.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도록 입혀주신 흰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것은 영감과 진리를 믿음으로 주님과 동거하고 동행하는 것이다. 주님이 주신 대속을 벗지 않고 입고 다니는 신앙행위는 완전한 행위이다. 완전한 행위의 기능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성화를 이룬 의의 기능이다. 주님과 동행하는 방편은 주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소망과 믿음(골 3:1-4; 히 12:2; 벧전 1:21)을 가지고 진리로 살아 사죄를 입고(벧전 1:21-23) 성령의 감동하시는 영감으로 살아 칭의를 입고(약 1:12) 주님과 동행하므로 사활대속을 벗지 않고 입고 행동할 때에 우리는 주님과 같이 온전한 삶과 생애를 할 수 있다(계 3:4-6).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기는 자는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는 것을 계속하는 사람이다. 주님과 연결된 생명으로 계속하여 순종하는 사람이 세상을 믿음으로 이기는 자이다. 이기는 자는 자기의 수치가 드러나지 않도록 사활대속을 입고 살므로 볼 수 없는 하나님 형상대로의 사람으로 성화되고 성장한다.
그 이름은 신앙행위 이름인데 이 행위로 말미암은 심신의 기능을 주님이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신다. 이 생명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으로 거듭나서 믿는 모든 성도들이 기록된 책이다. 성도들의 행위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로 구속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생명이시다(계 20:15). 성도들의 신앙행위는 행동록에 기록되고 그 기록된 행위대로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는다(고후5:10; 계20:12). 그러나 흰옷을 벗어버리면 그 행위의 기능은 생명책에서 제하여진다. 죄로 죽은 것은 썩어지기 때문이다. 또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책임을 지고 보증하여 주신다. 이기는 자는 수치를 벗고 흰옷을 입으므로 자기 성공하게 되고, 생명책에서 반드시 심신의 기능이 흐려지지 않으므로 온전한 행위를 이루어 만물이 환영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며, 주님이 보증하시고 진리와 영감이 보증하여 주는 것이 영원하다.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교회들에게 하시는 성령의 말씀을 귀 있는 자만이 듣는다. 이 귀는 신앙양심이다. 이 귀가 있어야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흰옷을 입고 주님과 동행하는 신앙행위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만들어 주시는 어떤 현실이라도 거기서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고, 지키지 못한 것은 즉시 회개하고 또 지켜 행하면 된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므로 주님의 말씀을 깨달아 믿고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 충성하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것을 이기는 것은 서머나 교회의 사대관 신앙이다. 또 거짓 선지자를 삼가고 발람의 교훈을 회개하며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굳게 잡고 믿음으로 행하면 예수님 사활대속을 벗지 않고 입고 살아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은 생명록에 흐리지 않고 보증하여 주신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의 말씀 곧 영감과 진리를 듣지 못하면 믿음에 나아가지 못한다. 이 깨달음의 은혜는 다섯 가지 성질을 가진다. 이 영감과 진리는 판이성과 시종성과 수호성과 계약성과 신실성을 가진 것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깨달아 알고 믿음으로 순종하면 온전한 신앙행위를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피와 성령과 진리의 특수은혜로 죽은 것을 살리고 하늘의 것으로 새 창조할 수 있다.


빌라델비아교회 3:7-13
빌라델비아는 사데에서 동남쪽으로 약 40㎞ 지점에 위치한 소도시이다. 오늘은 코가미스 계곡의 고원에 있는 터어키의 한 성읍으로서 하나님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포도주 산업이 발달했고, 예루살렘에서 도피해 온 유대인들이 적지 않았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같이 목숨을 위협하는 어려움은 없었으나 사회적, 경제적, 재능적 박해 속에 인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란 속에서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어떤 신앙을 가졌는가?

7-8  빌라델비아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 이가 가라사대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교회의 머리가 되신 주님은 여섯 번째로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여 말씀해주신다. 사자는 교회에 세운 주님의 종이고, 편지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이다. 교회를 주권하고 주재하시는 주님이 우리에게 제한된 자유를 허락하시고 계약하시며 믿음을 요구하신다. 우리의 믿음대로 하나님은 능동으로 역사해주시고, 우리는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 하였도다”하신 말씀은 인간의 자유 범위 안에 속한 것이다. 인간의 자유 범위 밖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범위이다. 인간은 자유 범위 안에서 충성도 불충도 가능하다. 또 하나님은 계약을 어기지 않는 것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속이지 않고 든든하게 하신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나타나신 주님은 거룩하고 진실하심으로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다. 다윗의 열쇠는 이스라엘의 왕권을 대표해서 말한 것이다(렘 30:9; 겔 34:23). 거룩과 진실을 가지면 하나님의 백성들도 왕권을 가지게 된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 제일 신앙이 건전한 교회이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거룩하고 진실해서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은 열린 문을 주셨다. 이 문은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천국노정을 주님이 형통하게 해주심으로 아무도 방해하지 못한다.
우리도 거룩과 진실을 가져야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다(고전3: 16, 17). 거룩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되고(딤전4: 5), 진실은 하나님의 성령이 감동하고 가르쳐주시는 진리대로 행하는 것이다(요일2: 27). 이렇게 거룩하고 진실하면 주님이 우리 신앙 길을 열어 주신다(시1: 1, 2). 또 우리도 우리 후배의 신앙 길을 열어주는 다윗의 열쇠를 받아 열어줄 수 있다.
그러므로 거룩과 진실은 신앙 성공의 열쇠이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도 거룩하고 진실하면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충성하여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 하므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내 지혜와 능력으로 삼을 수 있다. 온전함을 이루시는 이는 주님이시다. 거룩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별하여 그 말씀 안에서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고, 진실은 성령의 감동으로 가르쳐주시는 영감과 진리대로 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 중심위주로 선하여 의에 이르고 피차 서로 사랑하여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 속성대로의 사람이 되고, 주님은 머리로 우리는 그의 몸과 지체로 연합이 되어 우리가 영생하는 생명생활을 하게 된다. 거룩하고 진실한 삶은 하나님 말씀과 성령으로 사는 믿음 생활이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하는 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개인차는 있으나,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는 데는 능력이 부족하다. 이러한 적은 능력으로 계속해서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므로 주님의 능력을 받는 것은 우리가 거룩하고 진실하므로 내게 있는 것을 다할 때 주님이 더하여 주신다. 주님은 우리의 신앙행위를 다 아신다. 우리 마음과 생각도 자세히 살피신다.
주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는 것이고,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사활로 대속하신 주의 공로를 배반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주의 말씀은 지켜도 전지의 주님, 전능의 주님을 배반할 수 있다. 창조의 주님이 홀로 주권하고 개별을 섭리하시는 주님을 배반할 수도 있다. 주의 이름은 어떠한 주님이며 어떤 일하신 것을 총칭해서 말한다. 우리는 피로 값 주고 산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면 주의 이름을 배반하게 된다. 우리는 현실이 바꾸어질 때 창조의 주님, 대속의 주님, 주권하고 주재하시는 주님을 배반하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고, 열린 문(요 10:7)을 받는 그 방편은 무엇인가? 그것은 거룩과 진실이다. 거룩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 둘 따지고 구별하는 성품이다. 거룩을 범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도 없고 지키려고 하는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무지하고 연약하여도 창조주와 피조물, 천국과 세상, 죄와 의,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노하심, 선과 악, 영생과 영멸 등으로 구별하는 행위가 거룩이다. 거룩함으로 진실함에 이를 수 있다. 거룩한 것은 깨끗하고 참되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별하고, 거룩함으로 영감에 이르는 것이 진실이다. 그래서 영감은 진실하고, 사랑도 진실하고, 지식도 진실하고 지혜도 진실하다. 영감과 진리는 진실하므로 하나이다. 거룩함으로 진실에 도달하지 못하면 화평함을 가지지 못하고 불목하고 미워하여 갈라놓는 일만 한다. 거룩함과 화평함을 가져야 하나님을 만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원천은 거룩에서 비롯되고,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므로 성공하는 것은 진실함에 있다. 진실해야 다윗의 열쇠를 받아 가진다. 이 사람은 형통하므로 신앙 성공을 할 수 있게 된다.

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자세히 살펴보라. 자칭 정통이라고 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으로 증거하는 자들 곧 사단의 회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면서 마귀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그의 몸인 교회를 핍박하는 유대인들이 사단의 회이다. 유대인들의 핍박이 있었던 것은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가 동일하다. 서머나 교회에는 십일 동안 환란을 받게 되었지만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그들이 무릎을 꿇게 하고 항복하도록 해주신다고 말씀한다. 그것은 서머나 교회에는 더 많은 연단이 필요했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다하여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열린 문을 주시고, 시험의 때도 면하게 되고, 면류관도 주신다. 이것은 거룩과 진실이 없으면 구별하지 못한다. 거룩과 진실로 구별하고 하나님의 참된 진리를 깨닫고 믿음으로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함으로 주님이 책임을 지고 지키시며 이기게 하시고 형통하게 하시므로 저들을 굴하게 하시고 주님이 저들을 사랑하여 주시겠다는 것이다.

10-11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거룩하고 진실하므로 주의 말씀을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지켰다. 거룩하므로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으므로 진실한 주님의 교회가 되었다. 거룩하고 진실하신 주님도 지키셔서(빌 3:10-14)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여 주신다. 지금은 땅에 거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시험하는 때이다. 주님이 지키시면 어떤 시험도 면하여 이기지 못할 시험이 없다. 우리의 현실은 어떻게 바뀔지라도 가지고 있는 거룩과 진실을 굳게 잡고 적은 능력이라도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않으면 주님이 지키셔서 아무도 생명의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도록 하여주신다. 어떠한 미혹이 있어도 거룩과 진실은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거룩과 진실을 가지면 다윗의 열쇠를 받아 우리의 길이 형통하게 된다. 아무리 적은 능력이라도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필연적이며 과학적이기 때문에 절대 불변의 진리이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독자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하나도 시험되지 않았다. 그는 평생에 어려운 일이 없었다. 그것은 거룩과 진실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믿음 생활한 것이 인내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무시험 통과된 것이다.

12-13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사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거룩과 진실을 가지고 어떤 시험이라도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자이다. 그는 하나님의 교회에 기둥이 되어 모든 성도들에게 본이 되고 성전에서 나가지 않는다. 주님의 교회에 충추 인물이 된다. 또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주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여 주신다. 거룩과 진실을 가지고 신앙 생활하는 그에게는 전능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을 나타내신다. 다니엘의 신앙행위에는 전능자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을 나타내 보이셨다.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로운 천국, 깨끗한 천국, 영광스러운 천국, 권세와 영광이 있는 천국이 그에게 임하며 복음 운동이 그에게 역사한다. 그이 위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천국이 건설되며, 복음 운동이 일어난다. 그로 인하여 교회는 부흥하고, 그는 교회의 기둥이 되며, 탈선이 없고 모든 시험을 이긴다. 어려운 때가 없다. 그러므로 거룩과 진실을 굳게 잡아야 한다. 천국은 힘센 자가 얻지 못하고 힘쓰는 자가 차지한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귀가 있는 자는 진리를 깨달아 믿고 순종할 때 주님이 역사하여 주신다. 이 귀는 마음의 귀이다. 마음의 귀로 영감과 진리를 듣고 깨달아 알고 믿는 사람은 신앙을 성공하게 된다.


라오디게아 교회 3:14-22
재림하여 오시는 주님이 일곱 번째로 라오디게아 교회를 말씀하여 주신다. 라오디게아는 에베소와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양모를 생산하고 금융업이 발달하여 시민들은 대개 부요하게 살았다.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와 외부의 핍박이 없는 가운데 경제적 어려움도 없이 매우 평안한 가운데 신앙생활 할 수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세상과 함께 타락하여 일곱 교회 중에서 제일 타락하고 죽은 교회였다. 그러나 주님은 교회를 사랑하시고 책망하고 징계하여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고 말씀한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믿는 자는 주님 영광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겠다고 소망과 믿음을 견고하게 했다.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라오디게아교회의 사자에게 나타나신 주님은 아멘 생활, 충성 생활, 참된 증인 생활을 하시므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창조의 근본 능력을 가지신 주님이 모든 피조물을 주권하고 주재하시는 주님으로 나타나셔서 말씀한다. 주님은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아멘으로 믿었고, 죽으시기까지 복종하여 충성하시므로 대속을 완성하셔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나타내 보이셨다. 그리스도의 몸이 된 우리의 신앙생활도 각각 자기의 현실에서 아멘 생활, 충성 생활, 증인 생활, 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상대하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아멘 생활을 하면 자신이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자라가고, 충성생활을 하면 자신의 실력이 자라가고, 증인생활을 하면 자기의 지위가 마련되고, 창조의 근본 능력을 가지신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동행하면 주님의 소유는 자신 것이 되므로 주님과 같이 부요한 자가 된다. 아멘이 안 되면 충성이 안 되고, 충성이 안 되면 증인이 안 되고, 증인이 안 되면 주님만 상대하는 신앙생활이 안 된다. 신앙생활은 영감과 진리대로 믿고 순종하는 생활이므로 필연적인 불변의 진리이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어 있으며, 세상에 빛을 나타내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지 못하면 세상화 되고 만다.
그런데 다른 교회들은 둘 셋으로 되어있으나, 라오디게아교회는 완전히 속화되어서 하나 되어있는 것이 특이하다.

15-16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주님은 라오디게아교회의 미지근한 행위를 책망하셨다. 미지근한 행위는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한 행위이다. 라오디게아교회는 거룩하고 진실함이 없는 행위를 회개해야 한다. 옳은 것을 옳은 줄 알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으로 아는 것이 차든지 더웁든지 한 행위이다. 천국을 목적하고 준비하는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세상을 준비하고, 세상 준비를 천국 준비로 잘못 아는 생활은 거룩과 진실이 없는 행위이기 때문에 아멘도 안 되고 충성도 안 된다. 잘못을 잘못으로 알면 회개하게 되고, 옳은 것을 옳은 줄로 알면 열심을 가지고 믿음으로 충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자들은 세상에서 믿음 생활을 할 때에 거룩하고 진실해야 옳고 참된 것에 아멘하고 믿음으로 충성하게 된다. 미지근한 신앙행위는 주님의 몸과 지체로 연결이 되는 생명생활이 되지 못하고 영생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 말씀한다. 주님이 토하여 내친다고 하시는 말씀은 주님 안에 거하지 못하고 주님 밖에서 세상이 건설되므로 사망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7-18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라오디게아교회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세상에 필요하고 좋은 것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세상적으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영원무궁을 보지 못하고 세상만 보는 소경이요, 주님이 입혀주신 사활의 대속을 벗어버리고 삶으로 세상을 배경으로 안보로 삼고 자랑한다. 어렵고 힘이 드는 믿음 생활은 피하고 안일주의로 신앙생활 하므로 세상적으로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님은 네가 곤고하고 가련하며 가난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믿음으로 가지지 않은 것은 다 죽고 썩고 없어지기 때문이다. 가진 것을 빼앗길 때는 탄식하고 곤고하게 되고 가련하고 가난하게 된다.
또 어떻게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의복과 지위와 명예를 가지고 누려도, 주님의 사활대속을 벗어버리면 더러워서 벌거벗은 수치를 나타내 보인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입은 사활대속을 벗지 말아야 하고, 벗었으면 얼른 회개하고 다시 입고 있어야 금생과 내세 영원한 안보가 되고 영광이 된다.
또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라고 권면한다. 각자 자기의 현실에서 주님이 명하시는 영감과 진리를 깨달아 믿고 진리와 영감으로 생각하고 비판 평가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영감과 진리로 보아야 세상도 바로 보고, 천국도 바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각자 자기의 현실에서 거룩하고 진실하므로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 아멘하고, 영감과 진리대로 믿고 충성하면, 참된 주님의 증인이 되고, 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주님의 것이 영원히 내 것 된다. 말씀으로 구별하여 자기를 부인하면 주님의 뜻을 따라 믿음으로 아멘이 되고 신령한 눈이 띤다. 주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아멘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영감과 진리를 구별하여 믿는 일에 충성하면 불로 연단한 금을 사게 되고, 주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역사하시고 우리는 주님 안에서 행하므로 흰옷을 입고 주님 증인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면 주님과 동행이 되니까 주님의 것이 내 것 되어 부자 되고, 주님 영광의 보좌에 우리도 함께 앉게 된다. 이 교회는 바른 시관을 가지고 영원한 안보와 영광을 가지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영생을 누리게 된다. 거룩과 진실을 버리면 미지근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거룩하고 진실한 교회는 자기를 부인하므로 아멘하고, 자기를 다하여 죽도록 충성하며, 대속에 합당한 신앙행위를 한다. 주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받아 가지고 영원히 하나님에게 기쁨과 영광을 찬송한다.

19-20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은 사랑하시는 교회를 멸하지 않고 오래 참으신다.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잘못을 찾아 책망하시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징계를 해서라도 고쳐 바르게 하시고, 바르게 고치면 복을 주신다. 주님과 대항해서 이길 자는 아무도 없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이다. 라오디게아교회가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그 원인은 세 가지이다. 빈부관 곧 소유관이 잘못되었고, 안보관이 잘못되었고, 시관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를 회개하고 열심을 내면 주님과 동행하는 네 가지 생활이 된다. 첫째는 주님의 뜻에 아멘하는 생활이 되고, 둘째는 믿음으로 충성하는 생활이 되고, 셋째는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 생활이 되고, 넷째는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이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거룩하고 진실하므로 옳고 참된 진리에 아멘하고 열심으로 주님의 뜻에 충성해야 하며, 잘못된 것은 회개하므로 빨리 고쳐야 한다. 우리는 세상 현실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구별해야 한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음성인지, 아니면 마귀로부터 오는 음성인지 둘로 구별해야 한다. 구별하지 않으면 이리에게 삼킨다. 말이나 지식이나 생각이나 소리나 행동을 구별해야 한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음성이면 문을 열고 영접해야 하고, 주남의 음성이 아니면 문을 열지 말아야 한다. 문은 마음의 문이다. 성령은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 마음에 계속 증거하고 계신다. 문을 여는 것은 아멘하는 것이다. 주의 명령에 동의하고 찬성하면 충성이 따르게 된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 심신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로 더불어 역사하시고, 우리는 주님과 동거하고 동행하게 된다. 이것이 주를 증거하는 것이다. 주님과 동거하고 동행하는 자는 주님의 것이며 주님의 종이다. 우리가 주님의 것이 되면 주님의 것이 우리 것이 되고 우리 것이 주님의 것이 된다. 주님의 것을 가진 자는 부자다. 그러면 우리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자가 된다. 창조의 근본이 되신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복종하는 자는 주님 안에서 생명과 평안이다.

21-22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어떤 자인가? 이기는 자는 자기의 현실에서 주님의 뜻을 구별하여 자기를 부인하므로 아멘하고, 자기를 다하여 충성할 때 주님의 증인이 된다. 주님의 증인은 창조의 근본이 되신 주님만을 상대하는 믿음 생활을 한다. 이는 불로 연단한 금도 사고, 흰옷도 사고, 안약도 사는 자이다. 그리하여 주님이 이기고 하나님 보좌에 앉으심 같이 우리도 주님 보좌 우편에 함께 앉아 모든 만물들에게 주님 대리 행위를 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지극히 큰 소망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승리하고 성공하게 된다. 따라서 믿는 우리는 아멘 생활, 충성 생활, 증인 생활,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내 몸 같이 사랑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다음으로는 사대관 신앙으로 충성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우상을 가지고 가르치는 발람의 교훈을 받지 아니 하고 받은 것은 회개해야 하며, 이세벨의 교훈도 받지 말고 하나님의 교훈을 굳게 잡아야 믿음으로 승리한다. 거짓 선지자를 삼가고, 하나님에게 들은 말씀은 생각하고 받은 영감과 진리는 지켜 행하고 지키지 못한 것은 회개하므로 온전한 신앙행위와 인격을 이루어야 한다. 거룩과 진실을 가지면 행하는 일이 형통하여지고,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게 된다. 거룩과 진실을 빼앗기면 미지근한 행동을 하게 되고 주님에게 물리침을 받게 된다. 영감과 진리를 믿는 믿음과 대속을 사려고 하면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제일 어렵다. 그리하여 거룩하고 진실하므로 잘못된 것은 회개하고, 옳은 것은 열심을 내어 아멘하고 다하여 충성하면 흰옷을 입고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고, 창조주 하나님을 상대하므로 모든 만물을 소유하게 된다. 이 사람은 금생과 내세를 보고 준비하여 온전하신 주님을 닮아 가게 된다. 처음 사랑 처음 행위를 가진 에베소 교회, 사대관 신앙으로 충성하는 서머나 교회, 거짓 선지자를 삼가는 버가모 교회, 이세벨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교훈을 굳게 잡아야 하는 두아디라 교회, 온전한 신앙행위가 없는 사데 교회, 거룩과 진실을 가진 빌라델비아 교회, 미지근하여 속화되고 죽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양이 신약교회의 모습이다. 우리는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로서 단일교회를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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