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장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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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8-23 13:29 조회2,71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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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4장 강해
제목: 사단을 이기신 예수의 공생애 시작
요절: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1:1-4:1-11은 예수의 탄생과 유년 시절과 공생애 준비를 말씀한다.
4장에서 1-11절은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받으시므로 하늘과 땅으로부터 메시야이심을 인정받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스스로 메시야이심을 증거하는 말씀이다. 3절에서 처음 마귀의 시험은 돌을 떡덩이로 만들라는 시험이다. 5절과 6절에서 두 번째 시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시험이다. 8절과 9절에서 세 번째 시험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줄테니 마귀에게 경배하라는 시험이다. 이 시험은 인간의 물질, 권세, 영광 시험을 예수께서 대신하여 승리하신 것이다. 마지막 생명에 대한 시험도 부활하심으로 예수께서 영원히 이기셨다. 이것을 우리도 믿고 성령과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다.
12-25절은 예수의 공생애 시작하면서 사람 병을 치유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며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는 천국의 복음을 가르치시며, 그의 제자들을 모으시고, 사람들의 병을 치유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닮게 하시는 사역을 하셨다.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4:1-11
(마 4:1-11; 막 1:12,13; 눅 4:1-13; 엡 6:10-20)
1-2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그 때”는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때이다. “성령이 곧 예수를”(막 1:12)과 “그리고 예수께서”(눅 4:1) 말씀한 것을 보면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신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도전하시려는 그 때에’ 하는 말씀이다. 그 때에 성령은 예수를 마귀에게 시험을 이기게 하시려고 광야로 인도하시고, 예수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기도하시고 심히 주린 상태가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최초 복음 사역을 위하여 마귀의 시험이 있는 광야로 성령이 인도하셨다(막 1:12; 눅 4:1). 예수께서 시험을 받으신 것은 우연이나 돌발적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따른 것이 확실하다. 성령께서 예수를 광야로 인도한 것과 같이 우리의 믿음을 시련하기 위하여 우리도 우리의 현실을 만드시고 우리를 시험이 있는 현실로 인도하신다. 이러한 시험을 인내하고 이기는 자가 복이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받으시므로 성령이 충만하고, 성령과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해서 마귀를 이기려고 광야에 가셨고, 하나님 아버지에게 40일을 금식기도 하셨다. 마귀(살인자)는 세상 임금이 되어 하나님과 말씀을 거짓말로 속이고 죄를 범하게 하므로 죽고 망하게 한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고 시험하지도 않는다(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을 받아 죄를 범하고 사망하게 된다(약 1:14, 15).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넘어지게 하는 자는 마귀이다(눅 4:13). 마귀도 하나님이 부리는 종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허락이 필요하다(욥 1:12; 2:6). 모든 시험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도에 대한 믿음의 시련에 있다(벧전 1:7).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에 도전하신 것은 첫째 아담의 범죄로 택한 백성들이 죄와 마귀와 사망의 종이 된 데서 구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둘째 아담이신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에 도전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기 때문에 성도들도 성령과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이길 수 있다.
마귀가 시험하는 장소는 광야이다(막 1:12; 눅 4:1). 광야는 어디를 말씀하는 지가 분명하지 않으나 아무도 없는 외로운 곳이며 고통이 따르는 곳이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지 않으면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없는 곳이다. 오늘 우리의 현실도 성령이 만드시고 우리를 거기로 인도하신다.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서 하나님 아버지만 바라보고 의지하여 주야로 40일 동안 금식 기도하셨다. 40일은 밤과 낮으로 40일을 말씀하는 것은 달리 날을 해석할 수 없다.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눅 4:2) 하시므로 육신적으로 기진한 상태이었다. 육신적으로 마귀를 이길 수 없고 성령과 말씀으로 이길 수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마음과 몸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금식 기도하신 것이다.
3-4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시험하는 자는 마귀이다. 마귀는 미혹하는 영이며 거짓말쟁이이다(요 8:44; 딤전 4:1; 요일 4:6). 마귀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하며 그의 말씀에 복종하지 못하도록 하여 자기의 육신이 좋아하는 대로 행하게 한다(갈 5:17). 마귀는 40일을 굶주린 예수의 육신을 알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라고 시험을 했다. 이것이 예수에게 대한 마귀의 일차 물질 시험이다. 로마의 속국인 된 백성들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하나님의 아들 곧 메시야가 되려면 먼저 본인의 굶주림을 돌로 떡이 되게 하여 해결하라는 물질 시험이다. 이 의식주 문제는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사람들에게 경제 문제로 계속된다. 예수에게 물질 시험은 믿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한 시험이므로 믿는 우리에게도 있는 시험이다. 믿는 우리들도 물질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고(마 26:41; 골 4:2), 물질은 믿는 우리에게 우상이 되지 말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데 자본으로 사용해야 좋은 선물이 된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 보물로 우리가 사용하는 방편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행위에 사용하는 것이다(마 6:20). 예수께서 일차 마귀의 시험에서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말씀하시므로 마귀의 시험을 이겼다. 마귀의 세 번의 모든 시험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했다. 이 차 시험까지는 “만일”이라고 가정하면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의 구속사역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마귀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모르거나 의심하여 만일이라고 아니고 이미 알고 있다(마 3:17). 40일을 금식기도 한 예수께서 육신적으로 굶주린 상태를 이용하여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지 말고 첫째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게 한 마귀가 둘째 아담도 마귀 시키는 대로 하여 마귀의 자식이 되게 했다(창 3:1). 그러나 예수께서 신 8:3을 근거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인하여 주었다. 마귀는 일차 시험에서 하나님의 신성을 시험했으나 인성을 입으신 예수께서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내 양식이라는 것이다(요 4:34).
5-7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 4:5-10와 눅 4:5-12에서 기록된 이차 시험과 삼차 시험이서로 바뀌어 기록되었다. 이러한 기록은 모순이 아니라 사건의 시간적인 순서와 내용의 성격적인 순서를 기록하므로 더욱 시험에 대하여 구비하게 하고 있다. 마태복음의 기록은 시간적 순서보다 내용의 성격을 기록하고, 누가복음은 내용의 성격보다 사건의 순서를 따라 기록한 것(눅 4:5, 9)으로 더 정확한 구원의 도리를 깨달아 믿게 한다. 따라서 이차 시험은 권세 시험이다.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시험하였다. 이러한 시험에서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 성전 꼭대기로 세우는 것은 마귀가 지금 세상임금의 권세를 가지고 있고 예수께서는 마귀의 시험에 도전하여 거룩한 성전의 머리가 되어야 하는 전투이기 때문이다. 거룩한 성은 예루살렘 성을 말한다(마 27:53; 눅 4:9). 마귀의 시험 장소는 “성전 꼭대기”라고 말씀한다. 그러나 그 성전 꼭대기는 성전의 어디를 말씀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성전의 지붕은 새들이 앉지 못하도록 금으로 된 바늘 못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마귀는 예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고 시험하였다. 이차 시험은 권세 시험이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게 함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를 시험한 것이다. 예수께서 마귀를 이기고 하나님의 교회에 머리가 되실 것을 마귀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시험했다. 시험한 그 내용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이고, 그 근거는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시 91:11, 12)이다. 시 91:11, 12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능력으로 보호하시는 섭리를 찬송하는 시이다. 마귀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구주이심을 알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게 함으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권세와 실력을 나타내므로 구주가 되지 않느냐 하고 시험한 것이다. 이러한 시험도 마귀는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용한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대답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마귀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므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말씀하지 않는데도 자신이 뛰어 내리면 하나님이 돌에 발이 부딪치지 않게 하여 주시리라 하여 뛰어내리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된다. 거기는 하나님이 역사하여 주시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위하여 이용하려는 마음의 소원이나 생각은 마귀의 미혹이다(요일 4:6). 하나님의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므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에 순종하게 하신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하지 못하면 마귀의 종이 되고 만다. 따라서 예수께서도 신 6:16에 말씀대로 마귀의 미혹에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해석하여 하나님에게 복종하므로 마귀를 이겼다. 모든 것을 주권하고 주재하시는 하나님을 이용하여 시험하면 제가 교만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역사할 수 있다(엡 1:19, 20). 우리에게도 의식주로 인한 물질 시험이 계속되고, 자기의 권세와 실력을 마련하게 하는 권세 시험이 계속되고, 사람의 명예와 영광 때문에 오는 영광 시험도 계속된다.
8-11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삼차 시험은 마귀가 예수 그리스도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갔다.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의 시험에 도전하려고 간 “지극히 높은 산”은 어디인가? 팔레스틴 지방에서 가장 높은 산은 헬몬 산(2,814ⅿ)이나 모세가 임종 전에 약속의 땅을 바라본 느보산(신 34:1-3)으로 추정해보지만 정확하지 못하다. 문자적으로 천하만국을 바라볼만한 산은 없다. 예루살렘에 가까운 산에서 마귀가 통치하는 천하만국을 예수께서 마귀를 이기고 통치해야 하는 영계와 물질계를 의미해서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귀가 보여준 천하만국은 유대지역이나 세상에 모든 나라로 해석될 수 없다. 앞으로 마귀를 점령하고 예수께서 통치할 세계는 영계와 물질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사활로 대속을 완성하시고 승천하실 때 예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아서 홀로 주권자가 되시고 주재하게 되었다(마 28:18). 마귀의 삼차 시험은 영광 시험이다. 마귀는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하였다. 마귀에게 경배하면 마귀의 종이 되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신 대속사역은 실패되고 만다. 마귀는 천사로서 타락하여 우주에 들어와서 첫째 아담을 이김으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주장하는 임금이 되었다(눅 4:6; 요 12:31; 고후 4:4). 예수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요 1:29). 예수님은 마귀에게 경배해서 세상을 천국으로 통일할 수 없고 마귀를 이겨서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 마귀를 이기는 방편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믿고 순종하는 길뿐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한 마귀에게 단호하게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신 6:13) 말씀하였다. 그만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예수를 수종들었다. 오늘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다(요 1:12). 이 권세로 마귀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물리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만 경배하고 섬겨야 한다. 이것이 믿음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마귀는 떠나고 천사들이 와서 지켜주신다. 마귀는 떠났으나 완전히 마귀를 예수께서 이긴 것이 아니다. 마지막 사차 시험을 목숨 시험이었다. 십자가에 달렸을 때 마귀는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 27:40; 눅 23:35-37)고 시험했다. 그때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형과 대행과 대화친의 제물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로서 대속을 완성해야 하는 때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화목의 제물이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가졌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시험했다. 예수께서는 그때는 아무 대답도 아니 하셨다. 십자가에서 죽어야 우리를 위한 대속을 성공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셨으나 삼 일만에 부활하시므로 죄와 마귀와 사망을 완전히 이기셨다.
1차 갈릴리 사역 4:12-17(막 1:14-15; 눅 4:14-15)
12-13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마 3:13-17) 40일 동안 금식 기도하시며(1, 2절)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므로(3-11절) 공생애 필요한 준비를 마치셨다. 그의 공생애 출발에서 막 1:14, 15과 눅 4:14, 15은 갈릴리 지방을 소개하지만 그 이전에 예수께서 잠시 유대지방에서 사역하셨다(요 1:29-4:42). 공관복음에서 예수님의 세례와 시험 사건(주후 27년경)과 갈릴리 사역(주후 28년경) 사이에 약 1년의 간격이 있다. 이 기간이 예수님의 초기 유대 사역으로 보여진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구약의 성취로 말씀하려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말씀하시고 갈릴리 사역을 말씀하는 것 같다. 마태복음에서는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힌(마 14:3-12) 후부터 공생애를 시작하셨다고 말씀한다. 예수님의 선구자 세례 요한이 투옥되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 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보다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사 9:1, 2)을 따라 갈릴리 지방에 복음을 선포한 것이다(14-16절). 갈릴리에 이어 나사렛으로 가셨다가 가버나움으로 가셨다. 그 이유는 나사렛 사람들의 배척(눅 4:29-31)과 갈릴리 사람들의 환영(요 4:45)이었다. 그러나 그 근본 이유는 선지자의 예언 성취이었다(15, 16절; 사 9:1, 2). 그래서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초기 복음 사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은 여호수아 시대 두 지파의 지역으로써 그 당시 갈릴리 지방은 헤롯 안디바가 다스리던 행정구역이었다.
14-16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은 사 9:1, 2 인용이다. 이 예언은 이스라엘 18대 왕 베가(주전 740-732) 때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3세가 갈릴리 지방을 칩입하여 그곳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간 사건 (왕하 15:29)을 배경으로 한 말씀인데, 장차 갈릴리 사람들이 포로 생활에서 자유롭게 될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갈릴리지방 가버나움 이주를 이 예언의 성취로 말씀한다. 이것은 불신과 죄악으로 어두움의 세상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요 1:9)로 사람들이 생명과 구원을 얻게 될 것을 말씀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아니하므로 흑암에 앉은 백성들이 큰 빛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요 3:19; 벧전 2:9; 요일 1:5; 2:8)께서 오심으로 사망과 어두움의 땅과 그늘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이 비취므로 광명한 세상에서 생명과 구원으로 자유하게 되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는 생명과 구원을 얻는다.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이 때부터”는 마태복음에서 3번 사용되고 있다(16:21; 26:16).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에 있어서 일반 대중을 상대하여 공개적으로 복음 운동 시작을 말씀한다. 그가 전파한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이다.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선포한 것과 똑같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구약적인 측면에서 오시는 메시야를 두고 선포한 말씀이고(사 40:3),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는 자신이 메시야로서 이미 천국이 시작되었다는 말씀이다(15, 16절; 막 1:14, 15; 눅 8:1). 예수님의 처음 선포 내용도 ‘하나님 나라’이었고(막 1:15), 그의 마지막 선포도 ‘하나님 나라’이었다(행 1:3). 예수님의 비유들도 천국을 비유했다. 모든 복음서에서 ‘하나님 나라’의 단어가 100회 이상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복음의 중심은 ‘하나님 나라’이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지며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도 가진 것이다(요 1:12, 13; 빌 3:20).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믿음으로 천국을 건설하고 확장하는 일을 해야 한다. 천국의 확장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며 주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 제자를 삼은 일이 천국을 확장하는 것이다. 천국의 완성은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오시는 때이다.
네 제자를 부르심 4:18-22(막 1:16-20; 눅 5:1-11)
18-20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갈릴리 바다는 구약에서 긴네렛 바다였다(민 34:11; 수 12:3; 13:27). 바벨론 포로 이후는 ‘게네사렛 호수’로 불렀고(막 6:53; 눅 5:1), 신약시대는 ‘갈릴리바다’로 부르며, 헤롯이 건설한 인근 도시 이름을 따라 ‘디베랴 바다’로 부르기도 했다. 갈릴리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복음을 전파하신 예수께서 자기의 제자들을 부르셨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먼저 요한과 안드레가 예수님을 따르고 이어 안드레가 베드로도 예수님을 따르게 인도했다(요 1:35-42). 예수께서 정식으로 제자로 부르신 것은 저들이 어부로서 고기를 잡는 이때이다(막 1:16-20; 눅 5:11). 예수님의 제자는 세상 직업을 다 버려두고 천국을 바라보고 사람을 구원하는 자이다. 이 일에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과 헌신하는 것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예수께서는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를 잡는 시몬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를 불러서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시는 시몬과 안드레는 지체하지 않고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제자가 되었다(행 2:37-42). 베드로는 헬라식 이름으로 새 이름이며 그 의미는 ‘반석’이다(마 16:18). 시몬은 히브리식 이름으로 그의 본명이며 그 의미는 ‘들음’이다. 또 안드레는 헬라식 이름으로 그 의미는 ‘용감한 남자’이다. 그는 본래 세례 요한의 제자이었다(요 1:35-40).
21-22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세베대는 예수님의 이모 살로메의 남편(마 27:56; 막 15:40; 16:1)이므로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과 이종사촌이다. 야고보는 야곱의 헬라식 이름으로 ‘발꿈치를 잡았다’는 뜻이다(창 25:26). 그는 12제장 중에 가장 먼저 순교하였다(행 12:2). 요한은 ‘여호와의 은혜’라는 뜻으로 12제자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으며,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과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 야고보와 요한은 부친과 함께 그물을 깁고 있을 때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때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제자가 되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부름이 있어야 하고, 그 부름에 따라 무엇이든지 버리지 않고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될 수 없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더 바라보고 더 의지해야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갈릴리 사역 내용 4:23-25(눅 6:17-19)
본장은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사실(1-11절)과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신 사실(12-17절)과 네 제자를 부르신 사실(18-22절)에 이어 초기 갈릴리 사역 전체를 요약해서 말씀한다(23-25절). 그의 초기 갈릴리 사역의 중심은 가르치는 교훈 사역과 전하는 전파 사역과 고치는 치유 사역이다. 이러한 사역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역사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죄와 마귀와 사망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직접 전하고 가르치고 치유하므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 시키시는 것이다(마 11:2-5; 고후 5ㅣ17). 따라서 위의 3대 사역은 제자들에게 위임되었고(마 10:1, 7; 28:20), 오늘 주님의 교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육과 전도와 봉사가 위임되었다. 사람들이 모든 슬픔과 고통과 염려를 믿음으로 예수께 맡기기만 하면 참 된 생명과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된다(빌 4:6; 벧전 5:7).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도 예수께 나아가면 세상이 주는 것보다 더 나은 평안과 안식을 얻게 된다(마 11:28-30; 요 14:27).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은 육체와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고 세상과 육체를 신령하고 영원한 천국으로 변화시키고 성장시켜서 온전하게 하시는 것이다.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천국의 복음을 전하셨다(막 1:35-39; 눅 4:40, 41).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갈릴리 지방 전 지역을 조직적으로 복음 사역하셨다는 말씀이 아니고 갈릴리 지방 이곳 저곳을 다니시면서 천국의 복음을 전하셨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회당에서는 천국의 복음을 가르치셨다. 회당은 바벨론 포로 이후 유대인들의 예배와 교육의 중심지였다. 예수님 당시에는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동네마다 거의 회당이 있었다.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천국의 복음을 가르치며 토론을 할 수 있었다. 예수님뿐만 아니라 사도들도 회당에 모여 천국의 복음을 가르쳤다(행 14:1; 17:10). 그리하여 유대인들의 회당은 성전과 함께 신약교회를 건설하는 출발이 되었다. 또 예수께서 천국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면서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도 고쳐주셨다. 이 세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3대 복음 사역으로서 참된 교회를 건설하는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 되었다. 천국의 복음은 복음을 따라 회개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이 복음을 전하고 영접하여 믿는 자들에게 가르치면 듣고 깨달아 믿고 순종하는 자마다 구원을 얻는다. 이 구원은 천국의 백성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대로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성장한다.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온 수리아(Syria)는 수리아를 둘러싼 광범위한 지역을 두고 말씀하는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의 전하는 복음 사역은 넓은 범위에 전해지고 알려지므로 사람들이 듣고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므로 예수께서 그들의 질병을 고쳐주셨다. 모든 앓는 자는 일반적으로 병든 사람들을 망라해서 말씀한다. 구체적으로 그런 질병을 말하면 일반적으로 고치기 어려운 질병이다. 각색병은 비교적 가벼운 육신의 병이다. 고통에 걸린 자는 심각한 정도의 질병이다. 귀신들린 자는 정신적 질환이 있는 자이다. 간질하는 자는 발작성 경련과 졸도를 일으키는 중추신경 질환자이다. 중풍병자는 반신이나 전신에 마비를 일으키는 불수병이다.
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예수의 복음 사역은 유대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이방인에게도 전하여지므로 세계적인 것이다. 갈릴리 지방에 이어 데가볼리에도 전해졌다. 데가는 10이라는 뜻이고 볼리(polis)도시라는 뜻으로 10여개의 소도시 들이다. 이들 지역에는 이방인들이 살았다. 요단강 서편에 있는 여러 도시들에도 이 복음이 전해졌다.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에는 유대인들이 살았고, 요단강 건너편은 요단강 동편에 있는 지역들에도 복음이 전해져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불러내시는 복음 사역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루살렘과 유대의 복음이 아니고 요단강 서편과 동편으로 전해지는 세계적인 복음이었다.
제목: 사단을 이기신 예수의 공생애 시작
요절: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1:1-4:1-11은 예수의 탄생과 유년 시절과 공생애 준비를 말씀한다.
4장에서 1-11절은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받으시므로 하늘과 땅으로부터 메시야이심을 인정받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스스로 메시야이심을 증거하는 말씀이다. 3절에서 처음 마귀의 시험은 돌을 떡덩이로 만들라는 시험이다. 5절과 6절에서 두 번째 시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시험이다. 8절과 9절에서 세 번째 시험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줄테니 마귀에게 경배하라는 시험이다. 이 시험은 인간의 물질, 권세, 영광 시험을 예수께서 대신하여 승리하신 것이다. 마지막 생명에 대한 시험도 부활하심으로 예수께서 영원히 이기셨다. 이것을 우리도 믿고 성령과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다.
12-25절은 예수의 공생애 시작하면서 사람 병을 치유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며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는 천국의 복음을 가르치시며, 그의 제자들을 모으시고, 사람들의 병을 치유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닮게 하시는 사역을 하셨다.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4:1-11
(마 4:1-11; 막 1:12,13; 눅 4:1-13; 엡 6:10-20)
1-2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그 때”는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때이다. “성령이 곧 예수를”(막 1:12)과 “그리고 예수께서”(눅 4:1) 말씀한 것을 보면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신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도전하시려는 그 때에’ 하는 말씀이다. 그 때에 성령은 예수를 마귀에게 시험을 이기게 하시려고 광야로 인도하시고, 예수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기도하시고 심히 주린 상태가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최초 복음 사역을 위하여 마귀의 시험이 있는 광야로 성령이 인도하셨다(막 1:12; 눅 4:1). 예수께서 시험을 받으신 것은 우연이나 돌발적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따른 것이 확실하다. 성령께서 예수를 광야로 인도한 것과 같이 우리의 믿음을 시련하기 위하여 우리도 우리의 현실을 만드시고 우리를 시험이 있는 현실로 인도하신다. 이러한 시험을 인내하고 이기는 자가 복이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받으시므로 성령이 충만하고, 성령과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해서 마귀를 이기려고 광야에 가셨고, 하나님 아버지에게 40일을 금식기도 하셨다. 마귀(살인자)는 세상 임금이 되어 하나님과 말씀을 거짓말로 속이고 죄를 범하게 하므로 죽고 망하게 한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고 시험하지도 않는다(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을 받아 죄를 범하고 사망하게 된다(약 1:14, 15).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넘어지게 하는 자는 마귀이다(눅 4:13). 마귀도 하나님이 부리는 종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허락이 필요하다(욥 1:12; 2:6). 모든 시험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도에 대한 믿음의 시련에 있다(벧전 1:7).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에 도전하신 것은 첫째 아담의 범죄로 택한 백성들이 죄와 마귀와 사망의 종이 된 데서 구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둘째 아담이신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에 도전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기 때문에 성도들도 성령과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이길 수 있다.
마귀가 시험하는 장소는 광야이다(막 1:12; 눅 4:1). 광야는 어디를 말씀하는 지가 분명하지 않으나 아무도 없는 외로운 곳이며 고통이 따르는 곳이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지 않으면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없는 곳이다. 오늘 우리의 현실도 성령이 만드시고 우리를 거기로 인도하신다.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서 하나님 아버지만 바라보고 의지하여 주야로 40일 동안 금식 기도하셨다. 40일은 밤과 낮으로 40일을 말씀하는 것은 달리 날을 해석할 수 없다.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눅 4:2) 하시므로 육신적으로 기진한 상태이었다. 육신적으로 마귀를 이길 수 없고 성령과 말씀으로 이길 수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마음과 몸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금식 기도하신 것이다.
3-4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시험하는 자는 마귀이다. 마귀는 미혹하는 영이며 거짓말쟁이이다(요 8:44; 딤전 4:1; 요일 4:6). 마귀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하며 그의 말씀에 복종하지 못하도록 하여 자기의 육신이 좋아하는 대로 행하게 한다(갈 5:17). 마귀는 40일을 굶주린 예수의 육신을 알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라고 시험을 했다. 이것이 예수에게 대한 마귀의 일차 물질 시험이다. 로마의 속국인 된 백성들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하나님의 아들 곧 메시야가 되려면 먼저 본인의 굶주림을 돌로 떡이 되게 하여 해결하라는 물질 시험이다. 이 의식주 문제는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사람들에게 경제 문제로 계속된다. 예수에게 물질 시험은 믿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한 시험이므로 믿는 우리에게도 있는 시험이다. 믿는 우리들도 물질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고(마 26:41; 골 4:2), 물질은 믿는 우리에게 우상이 되지 말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데 자본으로 사용해야 좋은 선물이 된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 보물로 우리가 사용하는 방편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행위에 사용하는 것이다(마 6:20). 예수께서 일차 마귀의 시험에서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말씀하시므로 마귀의 시험을 이겼다. 마귀의 세 번의 모든 시험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했다. 이 차 시험까지는 “만일”이라고 가정하면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의 구속사역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마귀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모르거나 의심하여 만일이라고 아니고 이미 알고 있다(마 3:17). 40일을 금식기도 한 예수께서 육신적으로 굶주린 상태를 이용하여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지 말고 첫째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게 한 마귀가 둘째 아담도 마귀 시키는 대로 하여 마귀의 자식이 되게 했다(창 3:1). 그러나 예수께서 신 8:3을 근거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인하여 주었다. 마귀는 일차 시험에서 하나님의 신성을 시험했으나 인성을 입으신 예수께서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내 양식이라는 것이다(요 4:34).
5-7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 4:5-10와 눅 4:5-12에서 기록된 이차 시험과 삼차 시험이서로 바뀌어 기록되었다. 이러한 기록은 모순이 아니라 사건의 시간적인 순서와 내용의 성격적인 순서를 기록하므로 더욱 시험에 대하여 구비하게 하고 있다. 마태복음의 기록은 시간적 순서보다 내용의 성격을 기록하고, 누가복음은 내용의 성격보다 사건의 순서를 따라 기록한 것(눅 4:5, 9)으로 더 정확한 구원의 도리를 깨달아 믿게 한다. 따라서 이차 시험은 권세 시험이다.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시험하였다. 이러한 시험에서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 성전 꼭대기로 세우는 것은 마귀가 지금 세상임금의 권세를 가지고 있고 예수께서는 마귀의 시험에 도전하여 거룩한 성전의 머리가 되어야 하는 전투이기 때문이다. 거룩한 성은 예루살렘 성을 말한다(마 27:53; 눅 4:9). 마귀의 시험 장소는 “성전 꼭대기”라고 말씀한다. 그러나 그 성전 꼭대기는 성전의 어디를 말씀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성전의 지붕은 새들이 앉지 못하도록 금으로 된 바늘 못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마귀는 예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고 시험하였다. 이차 시험은 권세 시험이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게 함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를 시험한 것이다. 예수께서 마귀를 이기고 하나님의 교회에 머리가 되실 것을 마귀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시험했다. 시험한 그 내용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이고, 그 근거는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시 91:11, 12)이다. 시 91:11, 12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능력으로 보호하시는 섭리를 찬송하는 시이다. 마귀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구주이심을 알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게 함으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권세와 실력을 나타내므로 구주가 되지 않느냐 하고 시험한 것이다. 이러한 시험도 마귀는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용한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대답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마귀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므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말씀하지 않는데도 자신이 뛰어 내리면 하나님이 돌에 발이 부딪치지 않게 하여 주시리라 하여 뛰어내리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된다. 거기는 하나님이 역사하여 주시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위하여 이용하려는 마음의 소원이나 생각은 마귀의 미혹이다(요일 4:6). 하나님의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므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에 순종하게 하신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하지 못하면 마귀의 종이 되고 만다. 따라서 예수께서도 신 6:16에 말씀대로 마귀의 미혹에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해석하여 하나님에게 복종하므로 마귀를 이겼다. 모든 것을 주권하고 주재하시는 하나님을 이용하여 시험하면 제가 교만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역사할 수 있다(엡 1:19, 20). 우리에게도 의식주로 인한 물질 시험이 계속되고, 자기의 권세와 실력을 마련하게 하는 권세 시험이 계속되고, 사람의 명예와 영광 때문에 오는 영광 시험도 계속된다.
8-11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삼차 시험은 마귀가 예수 그리스도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갔다.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의 시험에 도전하려고 간 “지극히 높은 산”은 어디인가? 팔레스틴 지방에서 가장 높은 산은 헬몬 산(2,814ⅿ)이나 모세가 임종 전에 약속의 땅을 바라본 느보산(신 34:1-3)으로 추정해보지만 정확하지 못하다. 문자적으로 천하만국을 바라볼만한 산은 없다. 예루살렘에 가까운 산에서 마귀가 통치하는 천하만국을 예수께서 마귀를 이기고 통치해야 하는 영계와 물질계를 의미해서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귀가 보여준 천하만국은 유대지역이나 세상에 모든 나라로 해석될 수 없다. 앞으로 마귀를 점령하고 예수께서 통치할 세계는 영계와 물질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사활로 대속을 완성하시고 승천하실 때 예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아서 홀로 주권자가 되시고 주재하게 되었다(마 28:18). 마귀의 삼차 시험은 영광 시험이다. 마귀는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하였다. 마귀에게 경배하면 마귀의 종이 되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신 대속사역은 실패되고 만다. 마귀는 천사로서 타락하여 우주에 들어와서 첫째 아담을 이김으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주장하는 임금이 되었다(눅 4:6; 요 12:31; 고후 4:4). 예수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요 1:29). 예수님은 마귀에게 경배해서 세상을 천국으로 통일할 수 없고 마귀를 이겨서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 마귀를 이기는 방편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믿고 순종하는 길뿐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한 마귀에게 단호하게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신 6:13) 말씀하였다. 그만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예수를 수종들었다. 오늘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다(요 1:12). 이 권세로 마귀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물리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만 경배하고 섬겨야 한다. 이것이 믿음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마귀는 떠나고 천사들이 와서 지켜주신다. 마귀는 떠났으나 완전히 마귀를 예수께서 이긴 것이 아니다. 마지막 사차 시험을 목숨 시험이었다. 십자가에 달렸을 때 마귀는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 27:40; 눅 23:35-37)고 시험했다. 그때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형과 대행과 대화친의 제물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로서 대속을 완성해야 하는 때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화목의 제물이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가졌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시험했다. 예수께서는 그때는 아무 대답도 아니 하셨다. 십자가에서 죽어야 우리를 위한 대속을 성공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셨으나 삼 일만에 부활하시므로 죄와 마귀와 사망을 완전히 이기셨다.
1차 갈릴리 사역 4:12-17(막 1:14-15; 눅 4:14-15)
12-13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마 3:13-17) 40일 동안 금식 기도하시며(1, 2절)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므로(3-11절) 공생애 필요한 준비를 마치셨다. 그의 공생애 출발에서 막 1:14, 15과 눅 4:14, 15은 갈릴리 지방을 소개하지만 그 이전에 예수께서 잠시 유대지방에서 사역하셨다(요 1:29-4:42). 공관복음에서 예수님의 세례와 시험 사건(주후 27년경)과 갈릴리 사역(주후 28년경) 사이에 약 1년의 간격이 있다. 이 기간이 예수님의 초기 유대 사역으로 보여진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구약의 성취로 말씀하려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말씀하시고 갈릴리 사역을 말씀하는 것 같다. 마태복음에서는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힌(마 14:3-12) 후부터 공생애를 시작하셨다고 말씀한다. 예수님의 선구자 세례 요한이 투옥되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 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보다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사 9:1, 2)을 따라 갈릴리 지방에 복음을 선포한 것이다(14-16절). 갈릴리에 이어 나사렛으로 가셨다가 가버나움으로 가셨다. 그 이유는 나사렛 사람들의 배척(눅 4:29-31)과 갈릴리 사람들의 환영(요 4:45)이었다. 그러나 그 근본 이유는 선지자의 예언 성취이었다(15, 16절; 사 9:1, 2). 그래서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초기 복음 사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은 여호수아 시대 두 지파의 지역으로써 그 당시 갈릴리 지방은 헤롯 안디바가 다스리던 행정구역이었다.
14-16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은 사 9:1, 2 인용이다. 이 예언은 이스라엘 18대 왕 베가(주전 740-732) 때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3세가 갈릴리 지방을 칩입하여 그곳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간 사건 (왕하 15:29)을 배경으로 한 말씀인데, 장차 갈릴리 사람들이 포로 생활에서 자유롭게 될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갈릴리지방 가버나움 이주를 이 예언의 성취로 말씀한다. 이것은 불신과 죄악으로 어두움의 세상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요 1:9)로 사람들이 생명과 구원을 얻게 될 것을 말씀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아니하므로 흑암에 앉은 백성들이 큰 빛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요 3:19; 벧전 2:9; 요일 1:5; 2:8)께서 오심으로 사망과 어두움의 땅과 그늘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이 비취므로 광명한 세상에서 생명과 구원으로 자유하게 되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는 생명과 구원을 얻는다.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이 때부터”는 마태복음에서 3번 사용되고 있다(16:21; 26:16).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에 있어서 일반 대중을 상대하여 공개적으로 복음 운동 시작을 말씀한다. 그가 전파한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이다.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선포한 것과 똑같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구약적인 측면에서 오시는 메시야를 두고 선포한 말씀이고(사 40:3),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는 자신이 메시야로서 이미 천국이 시작되었다는 말씀이다(15, 16절; 막 1:14, 15; 눅 8:1). 예수님의 처음 선포 내용도 ‘하나님 나라’이었고(막 1:15), 그의 마지막 선포도 ‘하나님 나라’이었다(행 1:3). 예수님의 비유들도 천국을 비유했다. 모든 복음서에서 ‘하나님 나라’의 단어가 100회 이상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복음의 중심은 ‘하나님 나라’이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지며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도 가진 것이다(요 1:12, 13; 빌 3:20).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믿음으로 천국을 건설하고 확장하는 일을 해야 한다. 천국의 확장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며 주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 제자를 삼은 일이 천국을 확장하는 것이다. 천국의 완성은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오시는 때이다.
네 제자를 부르심 4:18-22(막 1:16-20; 눅 5:1-11)
18-20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갈릴리 바다는 구약에서 긴네렛 바다였다(민 34:11; 수 12:3; 13:27). 바벨론 포로 이후는 ‘게네사렛 호수’로 불렀고(막 6:53; 눅 5:1), 신약시대는 ‘갈릴리바다’로 부르며, 헤롯이 건설한 인근 도시 이름을 따라 ‘디베랴 바다’로 부르기도 했다. 갈릴리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복음을 전파하신 예수께서 자기의 제자들을 부르셨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먼저 요한과 안드레가 예수님을 따르고 이어 안드레가 베드로도 예수님을 따르게 인도했다(요 1:35-42). 예수께서 정식으로 제자로 부르신 것은 저들이 어부로서 고기를 잡는 이때이다(막 1:16-20; 눅 5:11). 예수님의 제자는 세상 직업을 다 버려두고 천국을 바라보고 사람을 구원하는 자이다. 이 일에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과 헌신하는 것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예수께서는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를 잡는 시몬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를 불러서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시는 시몬과 안드레는 지체하지 않고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제자가 되었다(행 2:37-42). 베드로는 헬라식 이름으로 새 이름이며 그 의미는 ‘반석’이다(마 16:18). 시몬은 히브리식 이름으로 그의 본명이며 그 의미는 ‘들음’이다. 또 안드레는 헬라식 이름으로 그 의미는 ‘용감한 남자’이다. 그는 본래 세례 요한의 제자이었다(요 1:35-40).
21-22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세베대는 예수님의 이모 살로메의 남편(마 27:56; 막 15:40; 16:1)이므로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과 이종사촌이다. 야고보는 야곱의 헬라식 이름으로 ‘발꿈치를 잡았다’는 뜻이다(창 25:26). 그는 12제장 중에 가장 먼저 순교하였다(행 12:2). 요한은 ‘여호와의 은혜’라는 뜻으로 12제자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으며,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과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 야고보와 요한은 부친과 함께 그물을 깁고 있을 때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때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제자가 되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부름이 있어야 하고, 그 부름에 따라 무엇이든지 버리지 않고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될 수 없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더 바라보고 더 의지해야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갈릴리 사역 내용 4:23-25(눅 6:17-19)
본장은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사실(1-11절)과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신 사실(12-17절)과 네 제자를 부르신 사실(18-22절)에 이어 초기 갈릴리 사역 전체를 요약해서 말씀한다(23-25절). 그의 초기 갈릴리 사역의 중심은 가르치는 교훈 사역과 전하는 전파 사역과 고치는 치유 사역이다. 이러한 사역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역사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죄와 마귀와 사망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직접 전하고 가르치고 치유하므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 시키시는 것이다(마 11:2-5; 고후 5ㅣ17). 따라서 위의 3대 사역은 제자들에게 위임되었고(마 10:1, 7; 28:20), 오늘 주님의 교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육과 전도와 봉사가 위임되었다. 사람들이 모든 슬픔과 고통과 염려를 믿음으로 예수께 맡기기만 하면 참 된 생명과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된다(빌 4:6; 벧전 5:7).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도 예수께 나아가면 세상이 주는 것보다 더 나은 평안과 안식을 얻게 된다(마 11:28-30; 요 14:27).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은 육체와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고 세상과 육체를 신령하고 영원한 천국으로 변화시키고 성장시켜서 온전하게 하시는 것이다.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천국의 복음을 전하셨다(막 1:35-39; 눅 4:40, 41).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갈릴리 지방 전 지역을 조직적으로 복음 사역하셨다는 말씀이 아니고 갈릴리 지방 이곳 저곳을 다니시면서 천국의 복음을 전하셨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회당에서는 천국의 복음을 가르치셨다. 회당은 바벨론 포로 이후 유대인들의 예배와 교육의 중심지였다. 예수님 당시에는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동네마다 거의 회당이 있었다.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천국의 복음을 가르치며 토론을 할 수 있었다. 예수님뿐만 아니라 사도들도 회당에 모여 천국의 복음을 가르쳤다(행 14:1; 17:10). 그리하여 유대인들의 회당은 성전과 함께 신약교회를 건설하는 출발이 되었다. 또 예수께서 천국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면서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도 고쳐주셨다. 이 세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3대 복음 사역으로서 참된 교회를 건설하는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 되었다. 천국의 복음은 복음을 따라 회개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이 복음을 전하고 영접하여 믿는 자들에게 가르치면 듣고 깨달아 믿고 순종하는 자마다 구원을 얻는다. 이 구원은 천국의 백성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대로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성장한다.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온 수리아(Syria)는 수리아를 둘러싼 광범위한 지역을 두고 말씀하는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의 전하는 복음 사역은 넓은 범위에 전해지고 알려지므로 사람들이 듣고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므로 예수께서 그들의 질병을 고쳐주셨다. 모든 앓는 자는 일반적으로 병든 사람들을 망라해서 말씀한다. 구체적으로 그런 질병을 말하면 일반적으로 고치기 어려운 질병이다. 각색병은 비교적 가벼운 육신의 병이다. 고통에 걸린 자는 심각한 정도의 질병이다. 귀신들린 자는 정신적 질환이 있는 자이다. 간질하는 자는 발작성 경련과 졸도를 일으키는 중추신경 질환자이다. 중풍병자는 반신이나 전신에 마비를 일으키는 불수병이다.
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예수의 복음 사역은 유대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이방인에게도 전하여지므로 세계적인 것이다. 갈릴리 지방에 이어 데가볼리에도 전해졌다. 데가는 10이라는 뜻이고 볼리(polis)도시라는 뜻으로 10여개의 소도시 들이다. 이들 지역에는 이방인들이 살았다. 요단강 서편에 있는 여러 도시들에도 이 복음이 전해졌다.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에는 유대인들이 살았고, 요단강 건너편은 요단강 동편에 있는 지역들에도 복음이 전해져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불러내시는 복음 사역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루살렘과 유대의 복음이 아니고 요단강 서편과 동편으로 전해지는 세계적인 복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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