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3장 강해 > 성경연구

본문 바로가기

신앙상담문의

052) 273-9970

마태복음 3장 강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3-31 10:42 조회923회 댓글0건

본문

마태복음 3장 강해

제목: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세례(회개와 세례)
요절: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12절)
1:1-2:23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탄생과 유아 시절의 사건을 말씀하고, 3:1-4:11은 30세로 성장한 예수께서 메시야로서 구속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몇 가지 사건을 말씀한다. 본장에서 1-12절은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며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한다. 13-17절은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 요한에게 우리를 위하여 회개의 세례를 받으시고 우리를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한다.


세례 요한의 회개 선포  3:1-12(막 1:1-8; 눅 3:1-18; 요 1:19-28)
1-3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그 때”는 2장이 끝나는 시점이 아니고 ‘예수께서 약 30년을 나사렛에서 사생활을 하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시려는 무렵에’ 하는 말씀이다(눅 3:23).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면서 전파했다(사 40:3; 막 1:4; 눅 3:3). 그는 아주 간결하고 철저한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다. 또 그 이유로 천국이 가까웠다고 외쳤다. 그는 구원으로는 회개를, 종말로는 천국을 부르짖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므로 구원을 얻은 줄로 믿었지만 요한은 하나님의 율법과 요구에서 멀어진 것(말 3:7-12)을 회개를 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유대인들을 상대하는 마태복음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 사용을 조심했다.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시므로 천국이 시작되었고, 사활로 대속을 완성하시므로 하나님 영광의 보좌에 앉으셨으며, 다시 재림하여 오시면 천국은 완성된다. 천국은 하나님 통치 세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 되시고 만주의 주가 되셨다.
그는 구약의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여년이 지난 마지막 선지자이면서 신약의 처음 선지자이다(사 40:3; 말 3:1; 4:5). 그는 또한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으로서(눅 1:5) 예수님의 친척이며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다. 유대 광야에 거주하며(삼상 23:14, 15, 24; 24:1; 대하 20:16)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라 했다. 그때 백성들은 로마의 식민 통치에서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메시야를 심히 기다리고 있었던 때였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에게 회개를 부르짖으므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메시야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눅 3:15), 예수님을 메시야로 증거하며(눅 3:15-17) 예수님에게 세례도 베풀고(막 1:9-11) 그가 옥중에 있을 때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냈다(눅 7:18-23). 그는 헤롯 안디바의 불법 재혼을 책망하다가(눅 3:19) 옥에 갇히고(눅 3:19) 옥에서 순교했다(막 6:14-29). 세례 요한은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평탄하게 했다.
4-6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세례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음식으로 삼았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다시 오리라고 믿고 있었던 엘리야의 재현이었다(왕하 1:8; 말 4:5; 슥 13:4; 마 17:10-13).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요한은 그의 사역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메뚜기는 아라비아인과 수리아인들이 먹는 일반적이고 정결한 음식이었다(레 11:22). 아랍에서는 메뚜기를 시장에서 식용으로 지금도 매매하고 있다. 석청은 광야에서 바위틈이나 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야생 꿀이다(신 32:13; 삿 14:8, 18; 삼상 14:25, 26, 29). 이러한 삶은 선지자들의 경건한 삶이다. 요한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나타내고 증거하여 준다. 메뚜기는 사단을 예표하고(욜 1:4; 계 9:3), 석청은 청결함을 예표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단을 이기는 것과 그의 생애가 청결함을 상징한다. “이 때”는 1절의 “그 때”와 같은 요한의 사역 시작의 때가 아니고 요한의 생애 전부를 두고 말씀한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요한에게 나와서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요한이 증거하는 메시지는 ‘회개하고 천국의 구원을 얻으라’ 두 가지로 간단하다. 구약 교회 마지막 때 선지자가 끊어진 이후 약 400여년이 되어 이러한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요한을 메시야로 오해하기도 했다(눅 3:15; 요 1:20). 요한의 증거에 사람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몰려나오고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요단 강 주변이 먼저 기록되지 않고 예루살렘이 먼저 기록된 것은 언제나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이 중심되고 다음이 유대이고 다음이 사마리아이다. 요단 강 주변은 갈릴리와 베뢰아와 사마리아 등이고, 온 유대는 예루살렘에서 남쪽 지방이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깨끗하게 되는 그 표시이다. 요한에게 찾아온 무리들이 자기들의 죄를 자복한 것은 국가적인 죄가 아니고 개인적인 죄를 자복하고 회개한 사실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렇게 개인적인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일은 이것이 처음이다. 그 전에는 개인적인 죄를 자복하지 않고 민족적인 죄를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민족적인 죄를 자복하는 것이 관례이었다. 요한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에게 세례를 준 것이었다. 요한의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시는 길 곧 메시야를 대망하는 거룩한 삶과 헌신으로서 하나의 정결예식이라 할 수 있다.
세례는 물세례와 성령세례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믿는 자에게 그 표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받는 물세례는 단 번이다. 그러나 성령 세례는 중생해서 믿는 그때부터 계속 받아야 한다. 이 세례의 의미는 옛 사람이 죽는 장례식이며 새 사람으로 사는 출발식이다(롬 6:3-6). 성령과 피와 진리는 우리의 생명이며 능력이다. 믿는 자는 이 생명과 능력을 따라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그의 심신의 기능이 영생하고 그때 사용된 소유가 영생하고, 자체의 존귀와 영광이 마련되는 성화구원이 건설된다.
7-9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바리새인”은 히브리어로 ‘파라쉬’이다. 그 의미는 ‘구별하다’ 또는 ‘분리하다’라는 뜻이다. 이 바리새인의 시작은 주전 167년 마카비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은 그들이 신앙의 속화를 배격하고 깨끗한 신앙생활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분파적인 사상과 태도는 내용보다 형식에 치우쳐서 외식주의자로 불리게 되었다. 반면에 그들의 율법준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정할 만큼 특별했다(마 5:20). 그들은 사람의 부활과 천사의 존재를 믿었다. 또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주권 사이에 중간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유대 광야에 나타난 것은 세례를 받으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경건한 자들이다’ 하여 사람들에게 나타난 것이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책망했다.
또 유대교 3대 종파는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와 에세네파이다. 그 중에 “사두개인”은 모세오경만 믿고 다른 성경은 부인한다. 또 내세와 부활을 믿지 않고 아주 세상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숫자적으로는 바리새인들보다 적으나 정치와 경제와 사회 전반에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시당하지 않았다. 이들이 유대 광야에 나타난 것은 세례를 받으려 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따르니 그냥 와서 살펴보려고 한 것 같다. 사두개인들의 유래는 다윗과 솔로몬 때 대제사장 ‘사독’으로부터 유래된다. 사두개인들은 예수님 당시에 성전을 장악했고, 바리새인들은 회당을 장악했다. 주후 70년 성전이 무너지고 나서 회당을 장악한 바리새인들에 의해 유대교가 확립되었다.
요한은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을 두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씀했다. 예수님도 저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했다(마 12:34; 23:33). 요한이 저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고 말한 것은 요한의 세례를 받으려고 하지 않고 그 상황을 살펴보려고 왔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한 것이다. 겉으로는 경건한 모양을 가졌으나 속에는 악령에 미혹을 받은 악의와 적의를 가졌기 때문에 책망을 한 것이다. 요한이 독사의 자식이라고 한 것은 저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미혹하고 범죄하게 하는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이다.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말씀한 것은 아무도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임박한 진노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다. 속에 악의와 적의를 가지므로 마음이 강퍅하고 미련한 겉으로 위선하는 외식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죄악은 얼른 깨닫고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지은 죄에 대한 자복과 뉘우침과 믿음으로 순종하는 올바른 행위이다. 요한에게 회개의 세례를 받으면 깨끗함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면하게 된다. 요한의 책망은 참된 회개로 신앙생활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요한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에게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속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육적으로는 아브라함이 유대인들의 조상이다.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할례를 받으면 ‘다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했다(요 8:33, 37, 53). 그러나 요한은 ‘창조주 하나님이 이 돌들로도 능히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할 수 있다’고 외쳤다. 우리는 혈과 육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과 성령과 말씀으로 거듭나서 영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구원을 얻으며 아브라함의 신앙 자손이 참으로 될 수 있다(롬 4:12, 16).
10-12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인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하고 완전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삐뚤어진 것은 지체하지 말고 즉시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의 법에 따라 흠과 점이 없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죄해 주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주의 피를 힘입어 지은 죄를 아는 대로 회개하면 깨끗함을 실제로 받게 된다.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여전히 죄를 범하게 되고 지은 죄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게 된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면 믿음으로 순종하여 의의 기능이 마련되고 그것은 영생하게 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을 불로 말씀한다(말 4:1; 마 13:40; 18:8, 9; 막 9:43; 요 15:6). 악인을 나무로 비유하여 말씀하고(시 1:3; 사 24:13; 56:3; 렘 17:8), 악인의 심판을 나무를 베어 불에 사르는 것으로 비유한다(사 10:33; 렘 46:22).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회개를 하고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하고 온전한 사람과 행위를 이루어야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되는 것을 선포한 것이다.
요한에게 받는 물세례는 회개하고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세례로서 형식을 갖추는 것이다. 사람에게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죄를 범하는 옛 사람을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한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소망과 믿음으로 그 표시이다(롬 6:3-5; 벧전 3:31). 물세례는 하나의 형식이나 그 안에 성령세례는 내용이다. 성령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성령과 진리로 거듭나서 믿는 그리스도인이 성령세례를 계속 받아야 한다(고전 12:13; 갈 3:27). 성령이 세례로 임하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다. 영의 중생은 단번이지만 심신의 성령세례는 중복적으로 계속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세례를 받도록 회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하고 성령과 피와 진리로 충만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성령세례는 계속하여 받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으로 사는 신앙행위를 하도록 해야 한다.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을 메시야로 착각했기 때문에 요한은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메시야라고 증거하는 것이다(눅 3:15; 요 1:19, 20; 3:25-36). 요한은 자신이 메시야를 위하여 예비하는 자로서 물세례를 준다고 말씀하고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능력이 많으셔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고 증거하였다. 세례 요한 뒤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때 유대인들의 신은 지금의 샌들과 같아서 신고 벗을 때 신끈을 매고 풀어야 한다. 신끈을 매고 푸는 일은 종들이 하고 종들이 신끈을 들고 다니기도 했다. 그리하여 세례요한은 그리스도와 비교하여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할 수 없는 자로서 천한 종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는 심판주로 증거한다.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 성령의 세례를 받은 자의 심령이 진리를 믿고 순종함이 열심과 간절로 뜨겁게 역사되는 것을 두고 말씀한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아 영감과 진리대로 믿고 순종한 것은 알곡이 되고, 육체를 따라 믿음으로 하지 아니한 것은 쭉정이가 된다. 악곡은 심신 속에 피와 성령과 진리가 알맹이 되어 성화된 것이고, 쭉정이는 심신 속에 피와 성령과 진리가 없고 악령과 악성과 악습대로 행한 것이다. 신약시대는 손에 키를 들고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타작마당과 같다.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모아다가 불에 사르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택자와 불택자를 심판하시고, 의인과 악인을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성령과 진리로 중생해서 믿는 그리스도인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아서 믿음으로 성령을 따라 행하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의인 생활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 3:13-17(막 1:9-11; 눅 3:21-22)
13-15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이 때”는 세례 요한이 메시야가 대속주로 사역하시는 데 있어서 온 유대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준비하고 있을 때이다(막 1:5). 이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대속하는 공생활을 시작하기 위하여 갈릴리에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려고 오셨다. 막 1: 9절에는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에서부터 와서”라고 말씀하고, 요 1:28에서도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요한이 세례를 베풀고 있었다고 말씀한다. 이는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성장하는 사생활에서 이제 유대지방에 오심으로 공생활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공생활은 세례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시므로 출발이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는 사복음과 사도행전에 기록되어있다(막 1:9-11; 눅 3:21, 22; 요 1:31-34; 행 10:24-48). 여기 깨달아야 할 도리는 요한은 회개하게 하는 물세례를 베풀었는데 죄가 없고 의로우신 예수께서(고후 5:21; 히 4:15-7; 벧전 2:22; 요일 3:5) 회개하게 하는 물세례를 받으신 것이다. 예수의 물세례를 받으심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한 순서이다.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택하신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정죄 받으시고 대속하시는 사역에 있어서 회개의 세례를 받으시므로 후에 믿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는 기초가 되었다(요 1:29).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예정된 때를 따라서 회개의 세례를 받으므로 예수의 죽으심에 연합한 옛 사람을 죽이고 부활하심에 연합한 새사람으로 살아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소망과 믿음을 가지게 하려 함이다(롬 6:3-11; 벧전 3:21). 그래서 예수의 물세례 받으심은 공생애의 출발이다. 또 예수께서 물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세례도 함께 받으셨다(17절). 성도들의 물세례는 단번이지만 성령세례는 계속 받아야 한다. 성령의 세례로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되고, 성령의 충만으로 성령으로 행하게 된다. 성령으로 행하지 않으면 육체대로 행하여 죽고 썩는 것만 거둘 수밖에 없다.
세례 요한이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말씀한 것은 죄가 없으신 예수께 물세례를 받으실 이유가 없고, 오히려 자신이 죄인으로서 예수께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 자이기 때문에 예수께 물세례 베푸는 것을 진심으로 거부했다(11절). 요한은 예수에게는 죄가 없고 자신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 알고 믿은 사실이 분명하다. 그래서 오히려 예수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때 예수께서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말씀하시므로 요한은 예수께 물세례를 베풀었다. 하나님의 의를 온전히 이루는 사역에 있어서 예수께서 물로 회개의 세례를 받으셔야 하는 그 이유는 택하신 백성들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정죄 받으시므로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 죄인이 되셨기 때문에 회개의 세례를 받으신 것이다. 정죄를 받으신 예수께서 회개의 세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죄의 형벌을 받아 죽으시므로 영원하고 완전한 대형의 사죄를 완성하셨다. 또 하나님 율법의 요구와 명령에 죽기까지 복종하시므로 대행의 칭의를 이루셨고, 친히 대형하고 대행하는 화목의 제물이 되어 죽으시므로 영원한 화친의 새 생명을 이루셨기 때문에 또 죽은 자 가운데서 영원히 부활하시고 우리에게 영생하는 소망과 믿음을 주시는 사활대속 공로를 완성하셨다. 따라서 이제 믿는 우리도 예수께서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받으셔서 우리를 위한 대속을 온전히 이루신 것과 같이 우리도 물로 세례를 받아야 하고 성령세례도 받아야 받은 대속을 벗지 않고 믿음으로 대속을 입은 자로 온전히 행할 수 있다. 성령세례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을 벗지 않고 입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한다.
16-17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물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세례도 함께 받으셨다. 세례의 의미는 ‘잠그다’는 뜻 외에 ‘씻는다’는 뜻도 있다. 예수께서 받으신 세례는 침례인지 세례인지 형식적으로 명백하지 못하나 세례는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께 임하며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가 하늘로서 들렸다(시 2:7; 사 42:1). 이 소리는 하늘로부터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이며, 원죄와 본죄로 하늘 문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므로 하나님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지상통치가 시작됨을 나타내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이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과 함께 세례를 받으시므로 성령의 임하시는 모습이 비둘기 같다고 말씀하는 것은 성령의 충만을 의미한다(눅 3:22).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선지자가 되셨고, 택한 자들을 사활로 대속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고, 만왕의 왕이 되시고 만주의 주가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기뻐하는 자라고 하신 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상통치권을 위임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음성은 변화산에서와 수난주간에도 다시 들렸다(마 17:5; 요 12:28; 벧후 1:17). 이 음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시작과 중간과 마지막에 들렸다는 것이다. 이 음성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대한 성부의 기쁘신 뜻이며 사랑으로서 성자의 구속사역을 온전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계시이다. 오늘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물로 세례는 한 번 받아도 성령의 세례는 계속 받으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의 직분을 믿음으로 감당해야 한다. 그리해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닮아가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성화 되고 성장한다.

2. 메시야으로서 계시와 선포 3:1-7:29

마태복음 3장 강해

제목: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세례(회개와 세례)
요절: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12절)
1:1-2:23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탄생과 유아 시절의 사건을 말씀하고, 3:1-4:11은 30세로 성장한 예수께서 메시야로서 구속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몇 가지 사건을 말씀한다. 본장에서 1-12절은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며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한다. 13-17절은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 요한에게 우리를 위하여 회개의 세례를 받으시고 우리를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한다.


세례 요한의 회개 선포  3:1-12(막 1:1-8; 눅 3:1-18; 요 1:19-28)
1-3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그 때”는 2장이 끝나는 시점이 아니고 ‘예수께서 약 30년을 나사렛에서 사생활을 하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시려는 무렵에’ 하는 말씀이다(눅 3:23).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면서 전파했다(사 40:3; 막 1:4; 눅 3:3). 그는 아주 간결하고 철저한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다. 또 그 이유로 천국이 가까웠다고 외쳤다. 그는 구원으로는 회개를, 종말로는 천국을 부르짖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므로 구원을 얻은 줄로 믿었지만 요한은 하나님의 율법과 요구에서 멀어진 것(말 3:7-12)을 회개를 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유대인들을 상대하는 마태복음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 사용을 조심했다.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시므로 천국이 시작되었고, 사활로 대속을 완성하시므로 하나님 영광의 보좌에 앉으셨으며, 다시 재림하여 오시면 천국은 완성된다. 천국은 하나님 통치 세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 되시고 만주의 주가 되셨다.
그는 구약의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여년이 지난 마지막 선지자이면서 신약의 처음 선지자이다(사 40:3; 말 3:1; 4:5). 그는 또한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으로서(눅 1:5) 예수님의 친척이며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다. 유대 광야에 거주하며(삼상 23:14, 15, 24; 24:1; 대하 20:16)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라 했다. 그때 백성들은 로마의 식민 통치에서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메시야를 심히 기다리고 있었던 때였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에게 회개를 부르짖으므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메시야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눅 3:15), 예수님을 메시야로 증거하며(눅 3:15-17) 예수님에게 세례도 베풀고(막 1:9-11) 그가 옥중에 있을 때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냈다(눅 7:18-23). 그는 헤롯 안디바의 불법 재혼을 책망하다가(눅 3:19) 옥에 갇히고(눅 3:19) 옥에서 순교했다(막 6:14-29). 세례 요한은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평탄하게 했다.
4-6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세례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음식으로 삼았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다시 오리라고 믿고 있었던 엘리야의 재현이었다(왕하 1:8; 말 4:5; 슥 13:4; 마 17:10-13).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요한은 그의 사역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메뚜기는 아라비아인과 수리아인들이 먹는 일반적이고 정결한 음식이었다(레 11:22). 아랍에서는 메뚜기를 시장에서 식용으로 지금도 매매하고 있다. 석청은 광야에서 바위틈이나 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야생 꿀이다(신 32:13; 삿 14:8, 18; 삼상 14:25, 26, 29). 이러한 삶은 선지자들의 경건한 삶이다. 요한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나타내고 증거하여 준다. 메뚜기는 사단을 예표하고(욜 1:4; 계 9:3), 석청은 청결함을 예표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단을 이기는 것과 그의 생애가 청결함을 상징한다. “이 때”는 1절의 “그 때”와 같은 요한의 사역 시작의 때가 아니고 요한의 생애 전부를 두고 말씀한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요한에게 나와서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요한이 증거하는 메시지는 ‘회개하고 천국의 구원을 얻으라’ 두 가지로 간단하다. 구약 교회 마지막 때 선지자가 끊어진 이후 약 400여년이 되어 이러한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요한을 메시야로 오해하기도 했다(눅 3:15; 요 1:20). 요한의 증거에 사람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몰려나오고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요단 강 주변이 먼저 기록되지 않고 예루살렘이 먼저 기록된 것은 언제나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이 중심되고 다음이 유대이고 다음이 사마리아이다. 요단 강 주변은 갈릴리와 베뢰아와 사마리아 등이고, 온 유대는 예루살렘에서 남쪽 지방이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깨끗하게 되는 그 표시이다. 요한에게 찾아온 무리들이 자기들의 죄를 자복한 것은 국가적인 죄가 아니고 개인적인 죄를 자복하고 회개한 사실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렇게 개인적인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일은 이것이 처음이다. 그 전에는 개인적인 죄를 자복하지 않고 민족적인 죄를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민족적인 죄를 자복하는 것이 관례이었다. 요한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에게 세례를 준 것이었다. 요한의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시는 길 곧 메시야를 대망하는 거룩한 삶과 헌신으로서 하나의 정결예식이라 할 수 있다.
세례는 물세례와 성령세례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믿는 자에게 그 표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받는 물세례는 단 번이다. 그러나 성령 세례는 중생해서 믿는 그때부터 계속 받아야 한다. 이 세례의 의미는 옛 사람이 죽는 장례식이며 새 사람으로 사는 출발식이다(롬 6:3-6). 성령과 피와 진리는 우리의 생명이며 능력이다. 믿는 자는 이 생명과 능력을 따라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그의 심신의 기능이 영생하고 그때 사용된 소유가 영생하고, 자체의 존귀와 영광이 마련되는 성화구원이 건설된다.
7-9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바리새인”은 히브리어로 ‘파라쉬’이다. 그 의미는 ‘구별하다’ 또는 ‘분리하다’라는 뜻이다. 이 바리새인의 시작은 주전 167년 마카비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은 그들이 신앙의 속화를 배격하고 깨끗한 신앙생활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분파적인 사상과 태도는 내용보다 형식에 치우쳐서 외식주의자로 불리게 되었다. 반면에 그들의 율법준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정할 만큼 특별했다(마 5:20). 그들은 사람의 부활과 천사의 존재를 믿었다. 또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주권 사이에 중간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유대 광야에 나타난 것은 세례를 받으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경건한 자들이다’ 하여 사람들에게 나타난 것이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책망했다.
또 유대교 3대 종파는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와 에세네파이다. 그 중에 “사두개인”은 모세오경만 믿고 다른 성경은 부인한다. 또 내세와 부활을 믿지 않고 아주 세상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숫자적으로는 바리새인들보다 적으나 정치와 경제와 사회 전반에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시당하지 않았다. 이들이 유대 광야에 나타난 것은 세례를 받으려 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따르니 그냥 와서 살펴보려고 한 것 같다. 사두개인들의 유래는 다윗과 솔로몬 때 대제사장 ‘사독’으로부터 유래된다. 사두개인들은 예수님 당시에 성전을 장악했고, 바리새인들은 회당을 장악했다. 주후 70년 성전이 무너지고 나서 회당을 장악한 바리새인들에 의해 유대교가 확립되었다.
요한은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을 두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씀했다. 예수님도 저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했다(마 12:34; 23:33). 요한이 저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고 말한 것은 요한의 세례를 받으려고 하지 않고 그 상황을 살펴보려고 왔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한 것이다. 겉으로는 경건한 모양을 가졌으나 속에는 악령에 미혹을 받은 악의와 적의를 가졌기 때문에 책망을 한 것이다. 요한이 독사의 자식이라고 한 것은 저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미혹하고 범죄하게 하는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이다.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말씀한 것은 아무도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임박한 진노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다. 속에 악의와 적의를 가지므로 마음이 강퍅하고 미련한 겉으로 위선하는 외식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죄악은 얼른 깨닫고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지은 죄에 대한 자복과 뉘우침과 믿음으로 순종하는 올바른 행위이다. 요한에게 회개의 세례를 받으면 깨끗함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면하게 된다. 요한의 책망은 참된 회개로 신앙생활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요한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에게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속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육적으로는 아브라함이 유대인들의 조상이다.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할례를 받으면 ‘다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했다(요 8:33, 37, 53). 그러나 요한은 ‘창조주 하나님이 이 돌들로도 능히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할 수 있다’고 외쳤다. 우리는 혈과 육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과 성령과 말씀으로 거듭나서 영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구원을 얻으며 아브라함의 신앙 자손이 참으로 될 수 있다(롬 4:12, 16).
10-12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인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하고 완전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삐뚤어진 것은 지체하지 말고 즉시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의 법에 따라 흠과 점이 없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죄해 주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주의 피를 힘입어 지은 죄를 아는 대로 회개하면 깨끗함을 실제로 받게 된다.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여전히 죄를 범하게 되고 지은 죄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게 된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면 믿음으로 순종하여 의의 기능이 마련되고 그것은 영생하게 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을 불로 말씀한다(말 4:1; 마 13:40; 18:8, 9; 막 9:43; 요 15:6). 악인을 나무로 비유하여 말씀하고(시 1:3; 사 24:13; 56:3; 렘 17:8), 악인의 심판을 나무를 베어 불에 사르는 것으로 비유한다(사 10:33; 렘 46:22).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회개를 하고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하고 온전한 사람과 행위를 이루어야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되는 것을 선포한 것이다.
요한에게 받는 물세례는 회개하고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세례로서 형식을 갖추는 것이다. 사람에게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죄를 범하는 옛 사람을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한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소망과 믿음으로 그 표시이다(롬 6:3-5; 벧전 3:31). 물세례는 하나의 형식이나 그 안에 성령세례는 내용이다. 성령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성령과 진리로 거듭나서 믿는 그리스도인이 성령세례를 계속 받아야 한다(고전 12:13; 갈 3:27). 성령이 세례로 임하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다. 영의 중생은 단번이지만 심신의 성령세례는 중복적으로 계속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세례를 받도록 회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하고 성령과 피와 진리로 충만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성령세례는 계속하여 받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으로 사는 신앙행위를 하도록 해야 한다.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을 메시야로 착각했기 때문에 요한은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메시야라고 증거하는 것이다(눅 3:15; 요 1:19, 20; 3:25-36). 요한은 자신이 메시야를 위하여 예비하는 자로서 물세례를 준다고 말씀하고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능력이 많으셔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고 증거하였다. 세례 요한 뒤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때 유대인들의 신은 지금의 샌들과 같아서 신고 벗을 때 신끈을 매고 풀어야 한다. 신끈을 매고 푸는 일은 종들이 하고 종들이 신끈을 들고 다니기도 했다. 그리하여 세례요한은 그리스도와 비교하여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할 수 없는 자로서 천한 종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는 심판주로 증거한다.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 성령의 세례를 받은 자의 심령이 진리를 믿고 순종함이 열심과 간절로 뜨겁게 역사되는 것을 두고 말씀한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아 영감과 진리대로 믿고 순종한 것은 알곡이 되고, 육체를 따라 믿음으로 하지 아니한 것은 쭉정이가 된다. 악곡은 심신 속에 피와 성령과 진리가 알맹이 되어 성화된 것이고, 쭉정이는 심신 속에 피와 성령과 진리가 없고 악령과 악성과 악습대로 행한 것이다. 신약시대는 손에 키를 들고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타작마당과 같다.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모아다가 불에 사르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택자와 불택자를 심판하시고, 의인과 악인을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성령과 진리로 중생해서 믿는 그리스도인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아서 믿음으로 성령을 따라 행하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의인 생활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 3:13-17(막 1:9-11; 눅 3:21-22)
13-15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이 때”는 세례 요한이 메시야가 대속주로 사역하시는 데 있어서 온 유대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준비하고 있을 때이다(막 1:5). 이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대속하는 공생활을 시작하기 위하여 갈릴리에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려고 오셨다. 막 1: 9절에는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에서부터 와서”라고 말씀하고, 요 1:28에서도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요한이 세례를 베풀고 있었다고 말씀한다. 이는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성장하는 사생활에서 이제 유대지방에 오심으로 공생활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공생활은 세례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시므로 출발이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는 사복음과 사도행전에 기록되어있다(막 1:9-11; 눅 3:21, 22; 요 1:31-34; 행 10:24-48). 여기 깨달아야 할 도리는 요한은 회개하게 하는 물세례를 베풀었는데 죄가 없고 의로우신 예수께서(고후 5:21; 히 4:15-7; 벧전 2:22; 요일 3:5) 회개하게 하는 물세례를 받으신 것이다. 예수의 물세례를 받으심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한 순서이다.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택하신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정죄 받으시고 대속하시는 사역에 있어서 회개의 세례를 받으시므로 후에 믿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는 기초가 되었다(요 1:29).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예정된 때를 따라서 회개의 세례를 받으므로 예수의 죽으심에 연합한 옛 사람을 죽이고 부활하심에 연합한 새사람으로 살아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소망과 믿음을 가지게 하려 함이다(롬 6:3-11; 벧전 3:21). 그래서 예수의 물세례 받으심은 공생애의 출발이다. 또 예수께서 물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세례도 함께 받으셨다(17절). 성도들의 물세례는 단번이지만 성령세례는 계속 받아야 한다. 성령의 세례로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되고, 성령의 충만으로 성령으로 행하게 된다. 성령으로 행하지 않으면 육체대로 행하여 죽고 썩는 것만 거둘 수밖에 없다.
세례 요한이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말씀한 것은 죄가 없으신 예수께 물세례를 받으실 이유가 없고, 오히려 자신이 죄인으로서 예수께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 자이기 때문에 예수께 물세례 베푸는 것을 진심으로 거부했다(11절). 요한은 예수에게는 죄가 없고 자신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 알고 믿은 사실이 분명하다. 그래서 오히려 예수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때 예수께서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말씀하시므로 요한은 예수께 물세례를 베풀었다. 하나님의 의를 온전히 이루는 사역에 있어서 예수께서 물로 회개의 세례를 받으셔야 하는 그 이유는 택하신 백성들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정죄 받으시므로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 죄인이 되셨기 때문에 회개의 세례를 받으신 것이다. 정죄를 받으신 예수께서 회개의 세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죄의 형벌을 받아 죽으시므로 영원하고 완전한 대형의 사죄를 완성하셨다. 또 하나님 율법의 요구와 명령에 죽기까지 복종하시므로 대행의 칭의를 이루셨고, 친히 대형하고 대행하는 화목의 제물이 되어 죽으시므로 영원한 화친의 새 생명을 이루셨기 때문에 또 죽은 자 가운데서 영원히 부활하시고 우리에게 영생하는 소망과 믿음을 주시는 사활대속 공로를 완성하셨다. 따라서 이제 믿는 우리도 예수께서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받으셔서 우리를 위한 대속을 온전히 이루신 것과 같이 우리도 물로 세례를 받아야 하고 성령세례도 받아야 받은 대속을 벗지 않고 믿음으로 대속을 입은 자로 온전히 행할 수 있다. 성령세례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을 벗지 않고 입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한다.
16-17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물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세례도 함께 받으셨다. 세례의 의미는 ‘잠그다’는 뜻 외에 ‘씻는다’는 뜻도 있다. 예수께서 받으신 세례는 침례인지 세례인지 형식적으로 명백하지 못하나 세례는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께 임하며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가 하늘로서 들렸다(시 2:7; 사 42:1). 이 소리는 하늘로부터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이며, 원죄와 본죄로 하늘 문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므로 하나님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지상통치가 시작됨을 나타내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이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과 함께 세례를 받으시므로 성령의 임하시는 모습이 비둘기 같다고 말씀하는 것은 성령의 충만을 의미한다(눅 3:22).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선지자가 되셨고, 택한 자들을 사활로 대속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고, 만왕의 왕이 되시고 만주의 주가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기뻐하는 자라고 하신 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상통치권을 위임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음성은 변화산에서와 수난주간에도 다시 들렸다(마 17:5; 요 12:28; 벧후 1:17). 이 음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시작과 중간과 마지막에 들렸다는 것이다. 이 음성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대한 성부의 기쁘신 뜻이며 사랑으로서 성자의 구속사역을 온전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계시이다. 오늘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물로 세례는 한 번 받아도 성령의 세례는 계속 받으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의 직분을 믿음으로 감당해야 한다. 그리해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닮아가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성화 되고 성장한다.



2. 메시야으로서 계시와 선포 3:1-7:29

마태복음 3장 강해

제목: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세례(회개와 세례)
요절: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12절)
1:1-2:23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탄생과 유아 시절의 사건을 말씀하고, 3:1-4:11은 30세로 성장한 예수께서 메시야로서 구속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몇 가지 사건을 말씀한다. 본장에서 1-12절은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며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한다. 13-17절은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 요한에게 우리를 위하여 회개의 세례를 받으시고 우리를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한다.


세례 요한의 회개 선포  3:1-12(막 1:1-8; 눅 3:1-18; 요 1:19-28)
1-3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그 때”는 2장이 끝나는 시점이 아니고 ‘예수께서 약 30년을 나사렛에서 사생활을 하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시려는 무렵에’ 하는 말씀이다(눅 3:23).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면서 전파했다(사 40:3; 막 1:4; 눅 3:3). 그는 아주 간결하고 철저한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다. 또 그 이유로 천국이 가까웠다고 외쳤다. 그는 구원으로는 회개를, 종말로는 천국을 부르짖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므로 구원을 얻은 줄로 믿었지만 요한은 하나님의 율법과 요구에서 멀어진 것(말 3:7-12)을 회개를 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유대인들을 상대하는 마태복음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 사용을 조심했다.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시므로 천국이 시작되었고, 사활로 대속을 완성하시므로 하나님 영광의 보좌에 앉으셨으며, 다시 재림하여 오시면 천국은 완성된다. 천국은 하나님 통치 세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 되시고 만주의 주가 되셨다.
그는 구약의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여년이 지난 마지막 선지자이면서 신약의 처음 선지자이다(사 40:3; 말 3:1; 4:5). 그는 또한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으로서(눅 1:5) 예수님의 친척이며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다. 유대 광야에 거주하며(삼상 23:14, 15, 24; 24:1; 대하 20:16)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라 했다. 그때 백성들은 로마의 식민 통치에서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메시야를 심히 기다리고 있었던 때였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에게 회개를 부르짖으므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메시야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눅 3:15), 예수님을 메시야로 증거하며(눅 3:15-17) 예수님에게 세례도 베풀고(막 1:9-11) 그가 옥중에 있을 때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냈다(눅 7:18-23). 그는 헤롯 안디바의 불법 재혼을 책망하다가(눅 3:19) 옥에 갇히고(눅 3:19) 옥에서 순교했다(막 6:14-29). 세례 요한은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평탄하게 했다.
4-6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세례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음식으로 삼았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다시 오리라고 믿고 있었던 엘리야의 재현이었다(왕하 1:8; 말 4:5; 슥 13:4; 마 17:10-13).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요한은 그의 사역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메뚜기는 아라비아인과 수리아인들이 먹는 일반적이고 정결한 음식이었다(레 11:22). 아랍에서는 메뚜기를 시장에서 식용으로 지금도 매매하고 있다. 석청은 광야에서 바위틈이나 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야생 꿀이다(신 32:13; 삿 14:8, 18; 삼상 14:25, 26, 29). 이러한 삶은 선지자들의 경건한 삶이다. 요한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나타내고 증거하여 준다. 메뚜기는 사단을 예표하고(욜 1:4; 계 9:3), 석청은 청결함을 예표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단을 이기는 것과 그의 생애가 청결함을 상징한다. “이 때”는 1절의 “그 때”와 같은 요한의 사역 시작의 때가 아니고 요한의 생애 전부를 두고 말씀한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요한에게 나와서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요한이 증거하는 메시지는 ‘회개하고 천국의 구원을 얻으라’ 두 가지로 간단하다. 구약 교회 마지막 때 선지자가 끊어진 이후 약 400여년이 되어 이러한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요한을 메시야로 오해하기도 했다(눅 3:15; 요 1:20). 요한의 증거에 사람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몰려나오고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요단 강 주변이 먼저 기록되지 않고 예루살렘이 먼저 기록된 것은 언제나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이 중심되고 다음이 유대이고 다음이 사마리아이다. 요단 강 주변은 갈릴리와 베뢰아와 사마리아 등이고, 온 유대는 예루살렘에서 남쪽 지방이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깨끗하게 되는 그 표시이다. 요한에게 찾아온 무리들이 자기들의 죄를 자복한 것은 국가적인 죄가 아니고 개인적인 죄를 자복하고 회개한 사실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렇게 개인적인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일은 이것이 처음이다. 그 전에는 개인적인 죄를 자복하지 않고 민족적인 죄를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민족적인 죄를 자복하는 것이 관례이었다. 요한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에게 세례를 준 것이었다. 요한의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시는 길 곧 메시야를 대망하는 거룩한 삶과 헌신으로서 하나의 정결예식이라 할 수 있다.
세례는 물세례와 성령세례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믿는 자에게 그 표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받는 물세례는 단 번이다. 그러나 성령 세례는 중생해서 믿는 그때부터 계속 받아야 한다. 이 세례의 의미는 옛 사람이 죽는 장례식이며 새 사람으로 사는 출발식이다(롬 6:3-6). 성령과 피와 진리는 우리의 생명이며 능력이다. 믿는 자는 이 생명과 능력을 따라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그의 심신의 기능이 영생하고 그때 사용된 소유가 영생하고, 자체의 존귀와 영광이 마련되는 성화구원이 건설된다.
7-9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바리새인”은 히브리어로 ‘파라쉬’이다. 그 의미는 ‘구별하다’ 또는 ‘분리하다’라는 뜻이다. 이 바리새인의 시작은 주전 167년 마카비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은 그들이 신앙의 속화를 배격하고 깨끗한 신앙생활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분파적인 사상과 태도는 내용보다 형식에 치우쳐서 외식주의자로 불리게 되었다. 반면에 그들의 율법준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정할 만큼 특별했다(마 5:20). 그들은 사람의 부활과 천사의 존재를 믿었다. 또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주권 사이에 중간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유대 광야에 나타난 것은 세례를 받으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경건한 자들이다’ 하여 사람들에게 나타난 것이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책망했다.
또 유대교 3대 종파는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와 에세네파이다. 그 중에 “사두개인”은 모세오경만 믿고 다른 성경은 부인한다. 또 내세와 부활을 믿지 않고 아주 세상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숫자적으로는 바리새인들보다 적으나 정치와 경제와 사회 전반에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시당하지 않았다. 이들이 유대 광야에 나타난 것은 세례를 받으려 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따르니 그냥 와서 살펴보려고 한 것 같다. 사두개인들의 유래는 다윗과 솔로몬 때 대제사장 ‘사독’으로부터 유래된다. 사두개인들은 예수님 당시에 성전을 장악했고, 바리새인들은 회당을 장악했다. 주후 70년 성전이 무너지고 나서 회당을 장악한 바리새인들에 의해 유대교가 확립되었다.
요한은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을 두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씀했다. 예수님도 저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했다(마 12:34; 23:33). 요한이 저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고 말한 것은 요한의 세례를 받으려고 하지 않고 그 상황을 살펴보려고 왔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한 것이다. 겉으로는 경건한 모양을 가졌으나 속에는 악령에 미혹을 받은 악의와 적의를 가졌기 때문에 책망을 한 것이다. 요한이 독사의 자식이라고 한 것은 저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미혹하고 범죄하게 하는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이다.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말씀한 것은 아무도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임박한 진노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다. 속에 악의와 적의를 가지므로 마음이 강퍅하고 미련한 겉으로 위선하는 외식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죄악은 얼른 깨닫고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지은 죄에 대한 자복과 뉘우침과 믿음으로 순종하는 올바른 행위이다. 요한에게 회개의 세례를 받으면 깨끗함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면하게 된다. 요한의 책망은 참된 회개로 신앙생활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요한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에게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속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육적으로는 아브라함이 유대인들의 조상이다.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할례를 받으면 ‘다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했다(요 8:33, 37, 53). 그러나 요한은 ‘창조주 하나님이 이 돌들로도 능히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할 수 있다’고 외쳤다. 우리는 혈과 육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과 성령과 말씀으로 거듭나서 영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구원을 얻으며 아브라함의 신앙 자손이 참으로 될 수 있다(롬 4:12, 16).
10-12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인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하고 완전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삐뚤어진 것은 지체하지 말고 즉시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의 법에 따라 흠과 점이 없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죄해 주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주의 피를 힘입어 지은 죄를 아는 대로 회개하면 깨끗함을 실제로 받게 된다.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여전히 죄를 범하게 되고 지은 죄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게 된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면 믿음으로 순종하여 의의 기능이 마련되고 그것은 영생하게 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을 불로 말씀한다(말 4:1; 마 13:40; 18:8, 9; 막 9:43; 요 15:6). 악인을 나무로 비유하여 말씀하고(시 1:3; 사 24:13; 56:3; 렘 17:8), 악인의 심판을 나무를 베어 불에 사르는 것으로 비유한다(사 10:33; 렘 46:22).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회개를 하고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하고 온전한 사람과 행위를 이루어야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되는 것을 선포한 것이다.
요한에게 받는 물세례는 회개하고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세례로서 형식을 갖추는 것이다. 사람에게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죄를 범하는 옛 사람을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한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소망과 믿음으로 그 표시이다(롬 6:3-5; 벧전 3:31). 물세례는 하나의 형식이나 그 안에 성령세례는 내용이다. 성령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성령과 진리
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성경연구 목록

>>성경연구
성경연구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5 마태복음 5장 강해 인기글 최고관리자 10-27 2873 0
4 마태복음 4장 강해 인기글 최고관리자 08-23 2719 0
열람중 마태복음 3장 강해 인기글 최고관리자 03-31 924 0
2 마태복음 2장 강해 인기글 최고관리자 12-30 2641 0
1 마태복음 1장 강해 인기글 최고관리자 10-25 2100 0
게시물 검색

교회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신정동교회 | 담임목사 : 이병철 | 울산광역시 남구 돋질로 37번길 9

TEL : 052) 273-9970 | E-mail : hobacoma@daum.net

Copyright © 예수교장로회 한국총공회 신정동교회. All rights reserved.